기도할게요
기도할게요
  • 제주신보
  • 승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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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언니를 위해 기도할게요.” 후배는 안부 전화 끝에 이런 인사말로 전화를 끊곤 한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넘겼다. 해를 거듭할수록 무심히 넘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다.

오늘은 선배 언니에게서 같은 인사를 받았다. 언니 어머니는 병상에서 내 가정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린다고 했었다. 당신의 딸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분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오직 신앙의 힘으로 견디셨다. 병문안 겸 먼 길을 찾아갔을 때, 우리 부부의 이름을 적어 머리맡에 두라고 하셨다. 얼마 뒤,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 언니는 “너를 위해 기도할게.”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먹먹해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다 울컥했다.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 줄까. 나는 과연 그만한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진실로 가슴을 열어 이웃을 위해 무엇을 나누며 살아왔나.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주변에 신실한 신앙심으로 종교 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지인들이 의외로 많다. 오랜 친구는 걸핏하면 왜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며 채근한다. 어울려 다니기 좋아했던 시절에 친구 따라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맴돌 뿐, 좀체 심적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내 기도를 이뤄 달라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 빈손이 부끄러웠다. 진정한 기도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무지함이 컸다.

친정도 모두 신앙인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적적한 노년의 삶이 신앙으로 인해 일상이 즐겁고 감사하다는 분이다. 자식들을 가슴에 품고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가없는 그늘이 고맙고 한편 죄송스럽다.

허허로운 날은 옛 생각이 종종 떠오른다. 읍내로 가는 길목에 서낭당이 있었다. 나뭇가지에 색깔 울긋불긋한 헝겊 조각이 남루하게 펄럭였다. 숲이 깊어 음습한 기운이 들어 두렵던 곳이다. 할머니가 정갈하게 차려입고 장에 갈 때, 돌 하나 얹고 내 손을 잡아 경건하게 머리 숙이던 모습. “우리 손녀 잘 살펴 주십시오.” 그 깊은 뜻을 헤아려 보곤 한다.

나는 주위로부터 얼마나 많은 기도의 빚을 지고 있는 걸까. 물질로는 갚지 못할 마음의 빚, 그 사랑을 감히 빚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이런 기도가 어떤 위로의 말보다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으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마음을 염치없이 누리고 산다.

근래 이웃돕기 성금이나 대기업에서 흔쾌히 내놓던 기부금이 많이 줄었다 한다. 모두 경제가 어려워진 탓이리라. 겨울은 가진 것이 넉넉한 사람도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계절이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곳간이 찬바람만 들락거릴 텐데. 올겨울나기가 작아진 어깨를 펼 수 있는 계절이 되길 소망한다. 적은 금액이나마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나눔이 강물로 흘러, 어려운 이웃에게 언 가슴을 녹이는 뜨뜻한 군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국민이 나라 걱정하는 일이 없기를, 소외된 곳에서 배곯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선냄비 종소리가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온정의 손길을 기다린다. 상가엔 트리가 찬연한 빛으로 반짝인다. 거룩한 성탄절이다. 신앙을 갖지 않았거나 종교가 달라도 기도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밤에 외롭고 힘든 이에겐 위로와 기쁨이, 가난한 이웃에겐 희망의 별이 선물로 찾아오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