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세월이 만들어낸 대자연의 걸작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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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남제주군 선거구서 제주도의원 당선된 김옥현
천연기념물 384호 당처물 동굴 발견한 시골 아낙 김옥희
초대 제주시보건소장·국립부산검역소장 등 역임 김완근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 수상한 제주 중진 언론인 김용수
조선 후기 무관 김용우…성품·행동 무골, 범 천총이라 불려
제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당처물 동굴. 동굴 내부에는 종유관 석순과 종유석, 동굴산호가 장관을 이룬다. 사진 제공=제주시
제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위치한 당처물 동굴. 동굴 내부에는 종유관 석순과 종유석, 동굴산호가 장관을 이룬다. 사진 제공=제주시

김옥현金玉賢1890~?, 제주도의원, 중문면에서 태어나 일제하에 경찰직에 10년 복무한 뒤, 제주성내로 생활근거지를 옮겨 운수업에 종사했다.

해방 후 대한청년단 소속으로 남제주군 선거구에 입후보해 3027표를 얻어 당선된바 있다. 만년에는 한시를 지으며 유유자적하게 지냈다.

김옥희金玉姬생몰년 미상, 동굴 발견 공로자는 김종식의 부인, 구좌읍 월정리(무주-) 태생, 천연기념물 제384당처-동굴은 용천동굴과 1거리에 있는 역시 환상적幻想的인 용암동굴이다.

월정리<무주->에 있는 동굴 입구 문화재 안내판에는 “1995년 밭을 정리하던 중 지역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라고 적혀 있다.

부부는 1970년 무렵 이 동굴이 있는 땅 1200평의 밭을 샀다. 부인이 시집온 뒤로 4년간 봄이면 육지에 갔다가 추석이면 돌아오는 바깥물질을 해서 번 돈으로 산 것이었단다.

굴의 길이 110m, 5~15m, 높이 0.5~2.5m 규모의 작은 동굴이지만 이 동굴엔 땅 위를 덮고 있는 패사貝沙층의 탄산염 성분이 빗물에 의해 유입돼 석회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종유관 석순, 석주, 종유석, 동굴산호가 아름답고도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그 지역주민이란 고 김종식과 김옥희 부부이다.

왜 이름을 밝혀주지 않는 것인가. ‘알타미라는 발견한 소녀 이름을 따서 동굴이름까지 붙여놓지 않았는가.

완전 -동산이라 밭을 평평하게 고르는데 고구마나 저장하면 딱 좋겠다고 생각되는 굴을 만났다.

그래서 한번은 굴 깊이가 얼마나 되나 들어가 보고 엄청나게 신기해 놀랐다는 것이다.

당처물-동굴은 종유석이 아름다워 실사단實査團이 동굴 내부 모습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다. 부인 김옥희가 이를 김녕-사굴의 김군천 할아버지에게 알려주자 이를 신고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김군천 할아버지, 김옥희 아주머니, 제주말로 삼촌三寸들에게 그때 어떤 보상報償도 나라에서 해주지 않았다.

김녕사굴과 만장굴은 주변의 벵뒤-’, ‘-’, ‘-’, ‘개우샛-등과 모두 하나의 동굴체계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 동굴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15798m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화산火山동굴계로 인정받고 있다.

그 모체는 바로 거문-오름이고 오름 정상 가까이에는 선흘善屹수직동굴이라 불리는 낭떠러지 같은 동굴이 있다.

여기가 모태母胎의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거문오름-용암동굴계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 신청하게 된 것이다.

세계유산 보존원칙에 따라 거문-오름은 일반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탐방 이틀 전까지 사전예약자에 한해 하루 300명까지만 마을과 계약을 맺었다.

사진 왼쪽부터 병원장 고영은, 오창흔, 장시영, 뒷쪽은 보건소장 김완근.
사진 왼쪽부터 병원장 고영은, 오창흔, 장시영, 뒷쪽은 보건소장 김완근.

김완근金完根1924~?, 의사, 국립부산검역소장, 제주시 일도1<제주-성안>에서 김명언金明彦과 양순정梁順貞의 장남으로 태어나 194017세 때 도립제주의원 병리病理실험실 기술 고원雇員이 됐다.

19445월 의사검정 예비시험에 합격하고 194612월 미군정美軍政 의사검정에 합격했다. 19471월부터 제주도립제주의원 의무실에 발령 받아 서울대학교의과대학 내과 및 이비인후과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19489월 제주시보건소 초대 소장에 취임했다. 각 시·군에 처음 설치된 보건소는 동년 815일 정부가 수립되면서 등장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약 10년을 근무하고, 19587월 국립國立제주검역소가 발족됨에 따라 초대 소장에 발탁됐다. 이후 19636월에 제1급지인 국립부산검역소장으로 영전됐다.

19742월까지 11년간을 검역檢疫소장 자리에서 근무하고 다시 자리를 옮겨 한국기생충박멸협회 부산釜山지부 부속의원장으로 취임, 19779월 한국건강관리협회 부속의원장으로 옮겼다.

19804월에는 부산시 북구보건소장에 취임, 이듬해 6월에 사임해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1963년 내각 수반이 주는 방역防疫유공표창을 비롯해 항만행정 관리개선유공표창(국무총리 1968), 방역유공 서훈 홍조근정훈장(대통령 1972) 등 영예로운 서훈敍勳이었다.

한때는 육군 군의관으로 근무, 개업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김용수의 생가(삼도동 옛 도립병원島立病院 앞).
김용수의 생가(삼도동 옛 도립병원島立病院 앞).

김용수金瑢洙1927(일제강점기)~?, 언론인, 본관 광산, 제주읍 삼도리의 김석영金錫英의 차남, 의병장 김석윤金錫允과 사학자 김석익金錫翼의 조카. 1956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45101일 제주신문濟州新報<창간당시 제주민보> 창간에 참여해 그의 친형 김진수金鎭洙를 제주민보 발행 책임자로 옹립, 1946126일 제주신문으로 제호를 바꾸고 미군정美軍政 당국에 등록을 마쳐 김진수를 사장으로 했다.

제주도문화상 수상, 후일 제남신문 사장(1972. 7~1974. 3)을 역임한 전통 제주 중진重鎭 언론인이다.

김용우金用雨1707(숙종33)~1800(정조24), 무신. 본관은 광산, 구좌읍 한동리에서 김계무金繼武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김계무는 1676(숙종2) 무과에 급제했다.

제주대학 총장을 지낸 김두희金斗熙의 한동리 집터가 출생 유허지遺墟地라고 전한다.

눈이 호안虎眼과 같아 흔히 범 천총이라고 불렸으며 천총을 거쳐 훈련판관訓練判官에 이르렀다.

그의 성품과 행동이 무골이어서 강맹영걸剛猛英傑하고 기개일세氣蓋一世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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