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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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前 탐라교육원장·수필가

숨 가쁘게 달려온 기해년 황금돼지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간다. 잠시 눈을 감고 지나온 세월들을 더듬어 본다. 연초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향해 건강과 행복을 간절히 소망했을 게다. 그리고 나라의 번영과 평화와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빌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온 일련의 과정은 힘겹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말 그대로 한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로 얼룩지고, 정치는 과거만을 답습하고, 국회는 당리당략과 밥그릇 싸움으로 온통 난장판이다. 그런 가운데 살림살이는 점점 어려워지고, 일자리도 없고, 안보도 위태롭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겨울나목에 매달려 있는 마른 잎처럼, 벽에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한 장의 달력만이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어떤 이는 어서 빨리 가기를 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아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싫든 좋든 우리들에게 주어진 세월이요 어차피 맞이하고 보내야할 시간들이다.

12월은 여느 달과는 다르다.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교량역할을 한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도 하고, 과거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의미 있는 달이기도 하다.

대나무가 속이 비어 있으면서도 올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촘촘하게 받쳐 주는 마디가 있어 가능하다. 튼튼한 마디가 있기에 대나무는 높은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도 자신의 성실한 삶과, 행복을 위해서는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이요 자신을 탓하기보다 남의 탓으로만 여기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자처하던 국회의원들은 여야로 나눠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 급기야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꼴이 되었다.

교수들은 올해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서로를 이기려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를 표현했다고 한다.

불교경전에 따르면 ‘공명지조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다.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는 이를 질투했다. 어느 날 한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 버렸고, 결국 둘 다 죽었다.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실상은 공멸하는 운명공동체가 되고 만다는 것.’

대화와 타협을 모르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국회는 이미 그 정치적 기능이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피로감뿐 아니라 혐오감까지 느낄 지경이다. 계층 갈등과 노사 갈등, 남녀 갈등과 세대 간 갈등, 지역 갈등이 실타래처럼 엉켜 풀어 가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기중심적 주장만을 되뇌고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평범한 말의 진리를 깊이 새겨봐야 한다.

며칠 없으면 경자년(庚子年) 흰쥐의 해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예년과 같이 떠오르는 해를 향해 소원을 빌 것이다. 새해에는 진정 온 누리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 찬 한 해가 되기를 다시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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