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내놓는 말
세밑에 내놓는 말
  • 제주신보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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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한 해가 저물 즈음이 세밑이다. 해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때라 남는 게 아쉬움이다.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짓눌린 마음에 날숨 들숨이 고르지 못하다.

예전에도 세밑엔 무심하지 않았다. 고관들이 왕에게 문안을 하고, 양반가에선 가묘(家廟)에 절하는 풍속이 있었다. 또 집안마다 웃어른을 찾아뵙고 친지들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며 한 해의 끝을 의미 있게 마무리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원체 전통의 뿌리란 깊다. 연중행사가 돼 있는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가두자선모금운동으로 도시의 세모에 빼놓을 수 없는 풍물이다. 세 다리 냄비 걸이,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 입은 구세군사관의 손종소리, 머릿속에 아로 새져진 풍경이 된 지 오래다. 12월 10일부터 성탄전야까지다. 올해는 시민들 오가는 발길이 많이 머물렀는지 궁금하다.

제주는 미풍양속의 섬이다. 피폐해졌다 하지만 제주도민은 아직도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단체와 개인이 적지 않아 바라보며 흐뭇하다. 혼자 사는 노인, 장애인 등에게 도시락을 보내고 김치와 반찬을 배달한다, 제주사회복지협의회 마당엔 푸드 뱅크 협찬 물류 보관 창고가 들어서 있다. 바삐 돌아가는 걸 보며 세상이 메마르지 않았다 싶어 가슴 쓸어내린다. 다른 지역에서도 세밑, ‘한겨울 추위 녹인 사랑의 과일 바구니’를 만들어 관공서며 병원과 요양원 등에 돌렸다 한다. 교회의 이런 선교활동은 늘 감동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세밑에 내놓고 싶은 말이다.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 ‘자리’란 자기를 위해 수행하는 것이고, ‘이타’란 자기 아닌 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불가에선 자리이타를 원만하고 온전하게 수행한 이를 ‘부처’라 하고, 보살이 이 길을 걸음으로써 마침내 성불(成佛)하게 된다고 한다.

단순치 않다. 타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한 오해다. 이를테면 나무는 남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자기대로 살다 보니 열매도 공기도 그늘과 땔감도 주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매한가지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남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내게 자유와 행복의 권리가 있듯 남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게 진리다.

벌은 꽃을 뒤적여 꿀을 얻는 대신 수정을 해 준다. 좀체 티격태격하지 않는다. 자기도 이롭고 상대도 이롭게 상생한다. 그래서 자리이타다. 누구를 위해, 어떤 대의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런 삶은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자연계의 생물이 그러하듯 자기대로 가볍게 살 일이다.

좀 더 나아가 ‘자리불이(自利不二)’,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깨달음에 닿는다면, 다툼과 괴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세밑이다. 궁핍과 고립 속에 허덕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훈김이다. 온정의 손을 뻗으면 그들도 좋고 나도 좋다. 이로우니 좋다. 훈훈한 세밑은 며칠 뒤 새해로 나아가는 희망의 불씨가 되니 더욱 소중하다. 손을 뻗을 곳은 멀리 있지 않다. 눈앞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자.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리고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가까운 행복’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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