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하이난
제주와 하이난
  • 제주일보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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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중국 최남단 섬인 하이난(海南)과 제주도는 공통점이 많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제주에는 260여 명의 유배인이 왔다. 하이난은 당나라 이후 재상(宰相)급 인사만 14명이 넘게 유배됐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하이난 싼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소동파가 한을 달래며 거닐었던 곳은 ‘하늘의 끝, 바다의 끝’이란 뜻으로 천애해각(天涯海角)이라 불린다.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제주는 일본군의 군사 요새로 전락했다. 일본군은 1942년 미국과 치른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해 전세가 기울자 하이난에도 전시 요새를 구축해 버티기에 들어갔다.

조선인 약 2000명이 이곳으로 끌려와 노역을 했고, 패전 후 약 1000명의 조선인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싼야시(三亞市) 싼뤄춘(三羅村)에는 대학살의 현장인 ‘천인갱’(千人坑·1000명이 묻힌 구덩이)이 있다. 이곳에는 추모관과 위령비가 설치됐다.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조선촌’이라 부르고 있다.

지난달 취재 차 하이난을 방문했다. 1980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변방의 외딴 섬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하이난에는 2014년 원창(文昌) 우주센터가 들어섰다. 중국판 케네디 우주센터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아파트 20층 높이로 중국이 보유한 가장 큰 우주발사체인 ‘창정(長征) 5호’ 로켓의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귀포시 송악산 일대와 가파도는 우주센터 입지의 최적지였다. 20년 전 일부 주민들이 반대 운동을 벌인 가운데 일부 활동가들은 ‘미사일기지가 들어선다’며 거짓정보를 흘렸다. 결국 대한민국 우주센터는 2001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들어섰다.

5년 전 하이난성 상무청 관계자 등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내국인 면세점을 선진 사례로 방문했다. 당시 하이난 관광도시인 싼야시에는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인 싼야국제면세성(三亞國際免稅城)의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영업장 면적은 축구장 10개 크기인 7만㎡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면세특구로 지정했다. 이어 외국인의 면세 쇼핑한도를 1만6000위안(268만원)에서 3만위안(504만원)으로 두 배나 늘렸다. JDC 내국인 면세점의 면세 혜택과 매출액을 1년 만에 추월해 버렸다.

제주항은 11개 부두에 25개 선석을 갖췄지만 수년째 포화되면서 1개 선석에 4척의 여객선이 정박하는 비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하이난은 선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인공섬(인공부두)을 건립했다.

싼야시 앞바다의 인공섬은 피닉스아일랜드(봉황도·鳳皇島)로 명명됐다. 2006년 1차로 36만㎡의 인공섬에 8만t급 크루즈 2척을 수용하는 부두와 호텔·리조트 등 편의시설을 조성했다.

중국 정부는 인공섬 옆에 마라도(30만㎡)보다 넓은 제2의 인공섬(48만㎡)을 건설했다. 2016년 매립이 완료돼 대규모 크루즈항 조성이 한창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3월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이제는 한국이 오히려 중국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에 부여한 자유무역과 특별자치의 특권과 지원이 부럽다”고 말했다.

하이난성 정부는 2035년까지 홍콩과 싱가포르, 두바이에 버금가는 국제 자유무역도시 건설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이미 자본과 첨단기술, 고급 인력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외국 기업의 첨단산업단지 입주 허가는 4시간이면 끝난다.

제주 도민사회가 제2공항 건설 찬·반 논쟁에 힘을 소진하는 동안 하이난에서는 유인 달 탐사에 대비한 대형 우주선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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