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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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옛말에 대문 밖이 저승이고, 사람 안 죽은 아랫목 없다고 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어느 곳에서나 죽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지만 죽음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동안 ‘고독사’라고 하면 독거노인이 홀로 숨지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경우로 여겨왔다. 하지만 고독사는 더 이상 독거노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대상이 중장년층 나아가 청년층까지 확대돼 고독사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90을 탈 없이 살다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임종을 맞는 행복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채 나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는 고독사도 숱하다.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이슬처럼 사라지는 애통한 젊은 죽음도 끊임이 없다.

▲가족해체와 실업난 등으로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급증세라고 한다. 2014년 1379명에서 2015년 1676명,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지난해 2447명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29%로 가장 많았고 60대(18%), 40대(17%)가 뒤를 이었다. 30대 이하 청년층도 6.2%를 보였다. 심지어 최근 서울시복지재단의 조사에서는 20~30대 청년층이 전체 고독사 추정 사례의 14%가량을 차지한다는 결과도 있다.

하지만 공식 고독사 통계는 아직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재 고독사 개념이 정립되지 않아 정부는 무연고 사망자 통계로 고독사 현황을 추정한다. 고독사 사망자 중 연고자가 있는 경우도 상당해 실제 고독사 발생 건수는 무연고 사망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얘기다.

▲고독한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다. 사회적 고립과 가난·질병 등이 만날 때 고독사가 된다. 그런 면에서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1인가구 비중이 급증하는 우리는 고독사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판자촌과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비교했더니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소득은 더 많았지만 자살률은 판자촌보다 훨씬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주거환경이 좀 불편하더라도 이웃과 소통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고독사가 오늘날 사회적 병폐의 합병증이라고 했다. 시대변화에 맞게 고독사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책을 더 정교하게 짜야 할 필요가 있다. 죽어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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