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장 스스로에게 편지를 띄우다
바람난장 스스로에게 편지를 띄우다
  • 제주신보
  • 승인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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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아트인 명도암 강부언 갤러리
올해 마지막 바람난장
2019년을 수채화로 그려
바람난장 가족이 올해 마지막 난장 장소로 아트인 명도암 강부언 갤러리를 찾았다. 바람난장 가족은 올해 4월의 아픔을, 유월의 침묵을 함께 나눴다.
바람난장 가족이 올해 마지막 난장 장소로 아트인 명도암 강부언 갤러리를 찾았다. 바람난장 가족은 올해 4월의 아픔을, 유월의 침묵을 함께 나눴다. 유창훈作  바람난장 현장 스케치.

바람난장에 띄우는 편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연분홍 꽃잎이 하롱하롱 떨어지던 그 날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이 들려준 시와 노래에 어렵던 마음의 빗장도 사르르 풀렸죠. 어린 마음이 되어 당신의 품속으로 힘껏 달려가 안겼습니다.

우리는 봄기운 가득한 들판에서 삶을 예찬했고, 잊을 수 없는 사월의 아픔을, 유월의 침묵을 함께 나눴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전복죽 한 그릇으로 정을 나누고, 한라산에서 해안에 이르는 섬의 모든 풍경을 끌어안으며 제주를 노래했습니다. 모두가 열연했고 모두가 행복했죠. 마치 그 모습은 김순이 시인의 <미친 사랑의 노래>를 닮았습니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
시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춤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혼자 미친 것도 좋지만
보는 사람마저 미치게 한다면
그거야말로 위대한 미침
두려워 마라
미치는 것을
-김순이‘미친 사랑의 노래 7’전문
-시낭송 김정희

돌아보면 모든 날이 마음의 잔칫날이었네요. 그 유쾌한 시간의 힘에 이끌려 일 년을 달려왔습니다. 별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큰 위안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여러 나날을 마주하는 사이 예술은 삶 한가운데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오능희 성악가의 목소리가 올해 마지막 바람난장 무대를 가득 채웠다.
오능희 성악가의 목소리가 바람난장 무대를 가득 채웠다.

 

어디든 이름난 무대가 되는 성악가 오능희 님. 기쁨과 환희의 춤으로 신명을 달래준 무용가 장은 님. 협연의 진수를 선사해준 오승명·김수연·강명은님. 언제나 귀보다 마음으로 먼저 듣게 되는 황경수 님과 수오노 펠리체 남성 중창팀. 간결한 시인의 언어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만든 문순자 님.

리코더의 고정관념을 아름답게 깨뜨린 오현석 님. 국악의 향기를 진하게 남겨준 전병규·현희순 님. 포근한 팬플릇 선율의 김경택 님. 묵직한 울림의 시낭송가 김정희·이정아 님과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연극인 정민자 님. 2019년 바람난장의 마지막 무대를 빛낸 얼굴들입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이냐고. 글쎄요, 까치발 세우고 먼발치에서 선망하며 바라만 보는 벽은 아닐 겁니다. 선선한 바람처럼, 따스한 햇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삶을 풍성하게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연 같은 것이겠죠. 우리도 그렇게 거품과 치장을 걷어내 일상 속으로 잔잔하게 스며들고 싶었습니다.

섬 어디랄 것 없이 무대가 되었습니다. 산과 들, 바다. 심지어 물 빠진 갯가에 춤과 노래자락을 펼쳐놓기도 했죠. 가는 걸음들을 불러 모으며 열린 무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느긋하고 편안한 길 보다는 멀고 험한 곳에 부러 발을 들여놓기도 했습니다. 제주와 더 가까워져야 진짜 제주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술가란 익숙한 것을 새로 보게 합니다. 누군가는 붓과 펜으로, 춤과 음악으로, 사진으로 제주의 삶과 문화,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 것. 말 그대로 매번 ‘업그레이드’와 싸움해야 했죠. 창작의 힘겨움과 예술의 열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여정입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서로의 초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승명, 김수연, 강명은씨가 마림바와 플루트, 카혼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쌓으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오승명, 김수연, 강명은씨가 마림바와 플루트, 카혼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쌓으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갈 때 만들어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빛이 납니다. 무엇을 손에 쥐려 하지 않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함께 걸어왔습니다. 우리만 아는 그 무언가의 가치를 느끼고 채워가며 바람난장의 서사를 써내려왔습니다. 담백하고 소박하게. 때론 고독하고 치열하게.

그 이야기가 이제 끝나갑니다.
새해엔 더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죠.

보고 싶은 바람난장.
당신이 그리워 쓰는 저의 두서없는 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새 봄이 올 때까지 편안하시기를,
깊어가는 겨울처럼 더 고요하고 충만하시기를...

사회  정민자
시낭송  김정희 이정아
성악  오능희 수오노 펠리체 남성 중창
마림바&플루트&카혼  오승명 김수연 강명은
국악  전병규 현희순
팬플릇  김경택
리코더  오현석
무용  장은
그림  유창훈
사진  허영숙
음향  최현철
글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