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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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MD헬스케어 고문/논설위원

살다보면 누구나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해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 이런 마음을 달래려 배낭을 메고 혼자 장충공원에 갔다. 그곳은 서울 사는 제주 친구들과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따라 배호가 부른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노래와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날이었다. 낙엽은 떨어져 뒹굴고 있었고 안개는 자욱했다. 비탈길 산길을 따라 남산 타워 쪽으로 쭉 올라가는데, 산기슭에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했던 분들의 발자취가 새겨진 비석들이 늘어 서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산 타워까지 올라가 간단하게 요기한 후, 내려오는데 패스트 트랙이 보여 커피 한 잔 사 들고 돌아서니. 국립극장 앞이었다. 거기서 조금 지나치니 3·1 운동 기념탑이 있고 그 앞에 게시판이 있어 바라보니, 붓글씨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농부가 남긴 것은 씨앗이 아니라 희망이다. 우리나라 역대 왕 중에서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사람이 있다. 광해이다. 그는 인조반정 때 왕위에서 쫓겨난 후 처음에는 강화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으나, ‘푸른 바다 성난 파도 어둠 깃든’ 행원리 어등포에 도착한 후. 마중 나온 목사가 여기가 제주라고 말하자 “내가 어찌 여기 왔느냐”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광해는 그 후 지금의 동문시장 서쪽에 살면서 4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후,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왕위에서 쫓겨나는 해 자신의 세자, 세자비가 모두 자결하고, 왕비마저 화병으로 죽는 참담한 상황 하에서도 그는 무려 20여 년을 더 살며 67세까지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옛 신하들이 곧 복권시킬 것이라는 희망이 그의 삶을 지탱하지 않았을까? 희망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불씨임이 분명하다.

중국인에게 존경받는 문호 루쉰(爐身)은 ‘고향’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기해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올해도 역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들 간에 의견이 갈리면서 첨예하게 대립되었고 결론 없이 해를 넘기고 있다. 끔직한 살인 사건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 것은 경기 침체였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경매가 급증하고 있고 낙찰가도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관광산업은 정체되어 있고 여전히 그 수익이 지역민에게 떨어지는 것이 적다. 가을장마와 잇단 태풍에 의한 피해는 월동 채소류와 감귤 등 1차 산업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광어, 양돈 등 전반적인 제주 경기가 다 좋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제2공항 갈등 문제는 다양하고 민주적인 의견 수렴 과정이라는. 경기 침체는 그동안 제주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구조 조정하는 기회가 되어 성장의 과실을 향유할 수 있다는. 내년에는 농·수·축산물 시세도 좋을 거라는….

오늘 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 또 이런 저런 희망씨앗을 베고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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