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카이로스의 시간과의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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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칠십 년 세월 동안 서로를 모르고 지냈던 형제가 있었다. 남한에 내려와 새장가를 들어 살아오던 아버지는 북에 계신 어머니 얘기를 돌아가실 때가 돼서야 풀어놓았다. 세 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정시곤은 남북이산가족 상봉단에서 동생을 만난다. 친정에 둘째를 낳으러 갔던 어머니는 전쟁에 둘째를 낳고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동생은 외할머니가 길러냈다. 금강산호텔에서 만난 형제는 서로를 확인하며 기쁨을 나눈다. 그런데 동생이 내놓은 사진 속 부모님은 형이 꺼낸 사진 속 인물과 확연히 달랐다. 형은 그 사진들을 양복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어두고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님의 묘에서 얻은 흙과 고향 주소를 동생에게 건넨다. 궁금한 걸 묻는 동생에게 형은 “지금 와서 뭐가 궁금하겠나. 우린 너무 어렸잖은가.”라고 말한다. 전성태의 단편소설 「상봉」(『창작과 비평』, 2019 겨울호)의 이야기다.

11월 말 기준으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13만3365명인데, 이들 중 생존자는 5만2997명이란다. 1988년부터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3147명이 올 1월부터 11월 사이에 별세했단다. 물리적 시간을 따라 소멸되어가는 이산가족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설 「상봉」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대에 찼던 남북 대화와 북미회담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2020년을 맞는다. 이 상황을 우리는 어찌 바라보아야 할까? 유시민과 도올 김용옥이 대담한 『통일, 청춘을 말하다』(통나무, 2019. 11.)에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결정적인 시간인 카이로스(kairos)가 이야기된다. 최수운이 「검결(劍訣)」에서 “때다! 때다! 나의 때다! 다시 오지 않을 때이로구나!”라고 말했던 세계정세 대변혁의 시간, 카이로스가 이때라고 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세 사람이 절대정신에 호출되어 “지금 이 세상의 돌아가는 판을 바꾸라는 사명을 가지고 세계사에 등장했다”라고 했다. 근현대사에 대한 수많은 저작을 써내면서 통일의 방향성을 제시해온 두 사람의 토론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들은 원효, 동학, 마가복음까지 동원하면서 근현대사의 분단 체제를 끝내기 위한 결정적인 시간, 기회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밝히고 있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평화통일을 도와줄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통일은 주체적으로, “리얼리티를 넘어서는 아이디얼리스트의 창조적 행동, 한발 앞서가는 아방가르드 정신이 없으면 위축되고 퇴폐적인 역사가 될 뿐”이라며 김용옥은 세계 15만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비티에스(BTS)축제와 아리랑축제를 여는 상상까지 하여 보인다. 미국에만 끌려 다니는 정책만 펼 게 아니라 남북한이 주도하여 도저히 전 세계가 통일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큰 울림을 준다.

2019년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쟁점이 불평등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알았다. 검찰개혁이나 선거제 개편, 총선 등 민주화의 거센 파도가 넘실댄다. 여기에 평화와 공존을 위한 통일의 노정까지 더해져, 카이로스의 2020년과 상봉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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