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인생
음악과 인생
  • 제주신보
  • 승인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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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무대 위에는 피아노만 자리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연주자 한 사람이 무대 위로 오른다. 가슴 파이고 양팔을 드러낸 청색 드레스를 입었다. 멋진 연주를 구성하려는 마음이 역력하다. 노장의 아마추어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고 있다.

허벅지 위에 손을 살포시 얹으며 잠시 묵상에 든다. 살며시 건반 위에 올린 손이 파르르 떨고 있다. 쇼팽의 녹턴이 흐른다. 초보 수준처럼 천천히 건반을 두드린다. 암기는 됐으나 악보는 당연히 올려져 있지 않다. 클래식피아노로 연습하다가 G 호텔 행사장의 전자피아노를 두드리니 땀 흘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환경이 바뀌고 연습량이 많았어도 떨릴 만하다.

연이어 두 번째 곡은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준비했다. 옥구슬이 굴러가듯 빠른 손놀림으로 실력자처럼 건반 위를 통통 튀며 고속 질주했다. 진땀 났던 첫 연주를 만회하듯 프로에 가까운 안정감이 깃들었다.

아픔을 악기로 대신하여 음악으로 치료받은 인생이다. 두 아들과 며느리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외지에서 어머니 연주를 응원하기 위하여 참석했다. 어머니가 혹여나 쓰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은 지난 십여 년의 가시밭길이었던 세월을 대변하듯 꼭 다문 입술이 무게감을 더한다. 참가비 없이 식사에 초대된 백여 명의 지인들이 숨을 죽여 가며 보고 듣는 내내 눈물을 훔친다.

다음 순서는 오 년 동안 배웠다는 색소폰 연주를 위하여 의상을 갈아입고 무대 위로 올랐다. 드레스를 벗고 바지 차림에 빨간 빤짝이 조끼를 걸친 모습은 영락없는 색소폰 연주자가 틀림없다. 계단에 올라설 때와 악보와 연결된 오디오를 찾아낼 때는 아들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 더 애잔하다.

조명을 받은 반짝이 의상은 배움에는 나이가 없음을 알려주면서 활력이 넘친다. 이선희 가수가 노래한 ‘J에게찔레꽃에 이은 아 대한민국을 색소폰 연주를 했다. 하면 된다는 열정과 노력은 필수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반짝이는 금관 악기에서 내뿜는 소리는 장내를 쩌렁거리면서도 연주자의 폐활량을 인정하게 했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곳곳마다 청명하게 들린다. 어쩜 큰 수술 이후에 폐활량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치고는 혹독했으리라. 연주자의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얻었다고 여길 일이다.

그녀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후보자의 아내였다. 예전의 통통하던 살은 어디로 갔을까.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고 신장이식과 신장투석으로 이어지며 말을 못 하고 마스크 썼던 모습도 떠오른다. 건강상의 이유로 마무리 인사도 못하여 미안하다고 초대한 의미를 묻어둔 자리였다. 미래의 대가성 없이 과거의 빚을 순수하게 보답하는 모습을 가슴에 담아둔다.

그 부부는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금은 갈 길을 달리했지만, 가시고기 사랑처럼 느껴진다. 연주자는 일평생 마음에 짐을 안고 살아간 듯하다. 말 못 하는 괴로움을 가슴에 묻으려고 피아노를 원 없이 쳤을 것이고 색소폰까지 섭렵했다. 건반을 두드리고 색소폰을 목에 매어 심취한 시간은 지구 몇 바퀴를 돌고도 남았다. 이제 음악으로 힐링이 되고 건강을 되찾아가니 빚 갚을 곳을 찾았다.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인생이 아름다웠다. 항간에 많은 소문을 뒤로하고 일방적인 희생은 힘겨웠으리라. 10킬로그램 이상의 체중감소는 때에 따라서 휘청거림도 보인다. 오늘의 연주는 다른 연주자 없이 혼자의 짐이라 여겨 꾸며온 듯하다. 나이를 무시하고 기억력의 선을 넘어 치유라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섰을 것이다.

삶은 무엇인가. 귀 밝은 남편과 눈 밝은 아내가 한 몸이 된 뱃사공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뱃머리에 앉은 앉은뱅이라도 좋으니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하루하루가 행복했으리라. 하루가 저물어갈 때 눈 밝은 아내를 업어 잔물결을 뒤로 한 채 나룻배만 남기고 땅을 밟는 일이 인생이다. 연주자의 인생 속에 잠겨버린 사랑은 강을 건너지 못한 삶이 되었다.

초대된 사람은 연주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둥근 얼굴에 일일이 인사하는 연주자는 천사였다. 이 세상 어디에서라도 강을 가로질러 사랑을 운반하고 있음 직하다. 연주자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다시 볼 수 없는 훈훈한 자리여서인지 내 마음도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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