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濟州道誌) 기록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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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근, 前 제주도 건설교통국장

제주도는 1946년 8월 1일 도제(道制) 실시 이후 36년 만인 1982년 처음으로 제주도의 역사를 집대성한 제주도지(濟州道誌)를 발행했다. 이어 1993년과 2006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도지를 발행했다.

필자는 제주의 도로 건설역사에 대한 옛 문헌을 찾아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동안 제주도지에 잘못된 기록이 계속 인용되면서 안타깝게 생각해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에 수정을 요구했다.

우선 5·16횡단도로는 도지에 1932년에 완공, 1934년에 지방도로로 됐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5·16도로는 1932년 착공해 1935년에 완공됐고, 1938년에 지방도로로 지정됐다. 구체적으로 이 도로는 1932년 임도 국비 공사로 13㎞를 개설한 뒤, 1935년 17㎞와 세월(洗越·속칭 배고픈 다리) 36개소를 시설한 데 이어 읍·면 시행공사로 제주읍에서 6㎞, 서귀면에서 8㎞를 개설해 44㎞를 완공했다. 1938년에는 교량 3개소(오등교·삼의악교·직사교)를 가설해 1938년 12월 1일 전라남도 고시 제216호로 지방도로 지정됐다.

둘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년)에서 제주목과 각 성 사이의 6개 지점까지 도로(길)가 있다고 서술했으나 이것은 길이 아니라 거리를 표시하기 위해 10리마다 점을 찍어 놓았을 뿐이다.

셋째, 1100도로(제2횡단도로) 편에서 ‘하찌마끼’ 도로가 일제강점 말기에 일본군이 20만 대군을 한라산에 주둔시켜 한라산을 한 바퀴 두르는 도로(임도)가 만들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군의 주둔 병력은 7만5000여 명이며, 도로는 횡단도로를 보수해 이용했을 뿐 일부 구간은 도로 개설이 되지 않았다.

제주도지 제2호(1963년 5월 발행)에 홍성림 전 제주도 건설과장이 기고한 내용에 의하면 제주시~서귀읍 간 횡단도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제주에 주둔했을 때 한라산을 중심으로 작전 항거지를 구축하면서 군용도로를 개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쪽으로는 도로 개설을 하지 않았고, 5·16도로를 이용했다. 또한 서쪽으로는 경사가 심하고 오름(망채오름·어슬렁오름)이 있어서 도로 개설은 안 됐다.

넷째, 교량 부분은 옛 문헌과 옛 지도 등에도 교량이 설치된 기록이 있어 추가 보완기술이 필요하다.

다섯째, 제주도지에는 역사사료에서 남아 있는 교량은 제주목에 5개소, 정의현에 1개소, 대정현에 2개소를 포함해 8개소의 교량이 있다고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별도교, 대천교, 석량교, 호촌교, 감산교 등 9개소가 있다고 기록돼 정정이 필요하다.

여섯째, 도지는 중산간에 주거지가 만들어지면서 중산간지역부터 도로 개설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의 마을 형성은 중산간지역이 아니라 해안지대부터 이뤄졌으며, 1300년에 15개 현이 설치된 후에 제주목에서 각 현까지 도로(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제주 향토사료(史料)의 지표와 역사의 근간이 되는 제주도지에 잘못 기록된 내용들이 시·군지, 읍·면·동지, 마을향토지를 비롯해 제주시 도시계획 40년사에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잘못 서술된 역사 기록을 수정해 후세에 올바른 역사 자료를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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