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난로
  • 제주일보
  • 승인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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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 수필가

이제 단순한 게 좋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만족하니 바라는 게 점점 줄어든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나 정신적인 노동으로 두뇌가 혹사당하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빼앗겨 최대한 단출하게 살고 싶다. 집착하여 쌓아 두었던 것들도 훌훌 내다 버리고 선방처럼 간결하게 한다.

비워진 집안에서 수도승처럼 참선이라도 하고 싶다. 마음을 추스르니 이 겨울 등을 데워 줄 난로 하나와 동행하는 게 필수 조건이다.

밖은 바람이 울부짖는다. 유리창을 두른 성에가 마음까지 철갑을 두른다. 필요한 물품이 있어도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냉동실 깊이 들어있던 음식 재료들을 뒤적거리지만 따뜻한 국물이면 애간장 녹이기에 충분하다.

소소한 끼니를 챙겨 먹는데 거실의 파수꾼 난롯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겨울은 거뜬하다. 초저녁부터 켜 놓은 난로의 열기는 마음의 온도마저 올려놓는다. 움직이는 동선도 여유롭고 오그라들었던 심신이 편안하다.

오래전 직장을 다닐 때다. 연통이 달린 둥근 난로가 사무실 가운데 주빈처럼 턱 버티고 있었다. 오전 근무를 팽팽한 긴장 속에 보내고 오후가 되면 과장님을 필두로 직원들이 난롯가로 슬슬 모여서 몸을 데운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는 과장님께 얼른 결재 서류를 내밀면 예상 질문을 준비하고 있던 입 한번 떼지 않고, 결재 칸이 모자랄 정도로 휘갈기는 사인을 해 준다. 몸이 느끼는 나른함은 자연스레 소통이 이뤄지게 하는 통로가 된다.

살다 보면 찬 바람이 쌩 부는 성정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뾰족한 가시를 내밀고 언제 본 적이나 있었냐는 듯이 눈길도 주지 않는 차가움에 한참을 수습해야만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새기다 보면 급기야는 상처로 부서지지만 순간뿐이다. 단연코 상대가 잘못하고 있는데, 그걸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넘기려 한다.

사람 사이에 정()이 물 흐르듯 교류가 되는 삶이면 잘 살아내는 것일 텐데. 결핍된 영혼이 불쌍하다. 도리어 측은지심이 들면서 남의 잘못을 거울삼아 내 자신을 성찰한다.

기온이 급강하하니 거실에 냉대 기류가 흐른다. 마음으로 전이된 휑한 기운은 가슴에 품고 있던 정을 그리워하게 한다. 이 시점에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잘살아내고 있다고 스스로 방점을 찍는 일은 아닐는지.

미술관에서 만난 그녀와 나는 화가의 그림에는 대충 일별을 주고 서로의 얼굴이 명화인 양 눈을 떼지 못한다. 전화 통화로 안부만을 묻다가 얼마만의 해후인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하게 된다. 겉모습은 분명 변한 게 있는데 서로를 도닥이느라 좋아 보인다고 빈말을 늘어놓아도, 오가는 정()의 무게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못다 한 이야기가 아쉬워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모처럼 활짝 웃게 한다. 경계심 없이 열어젖힌 마음은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따뜻하게 지펴진다. 손해 볼까 봐 머리 굴릴 일도 없다. 실타래 같은 이야기의 결론은 이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니 더 이상의 욕심은 화를 부를 뿐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 건강만을 지키자고 다짐한다.

무료한 중년, 활력을 주는 게 무엇일지 그걸 찾아서 즐기자고 약속을 굳게 하건만 헤어지는 게 아쉽다.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터를 잡아서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루지도 못할 희망 사항을 두서없이 뇌까리는 거로 위안 삼는다.

찻값을 서로 지불하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키가 큰 내가 성큼 카운터로 먼저 당도하여 계산한다. 오늘은 꼭 내가 차 한잔 사주고 싶었다고 아쉬워하던 그녀가, 자기 목을 감싸고 있던 목도리를 내 목에 꼭꼭 둘러 주고 떠난다.

돌아오는 길, 어둠이 깔린 거리를 대낮인 양 질주한다. 푸석거리던 가슴 언저리가 촉촉해진다. 혹한의 겨울 같은 인생사, 난로처럼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면 살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한기가 도는 거실에 난로를 켜니 훈훈하다. 어찌 이 겨울이 춥다고만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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