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전 재산 장학기금 출연…26년째 이어져
(119)전 재산 장학기금 출연…26년째 이어져
  • 제주신보
  • 승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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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신 김위민, 제주 위문…폐단 10조항 조정 보고
고려 후기 무신 김유①, 1374년 제2차 목호 토벌 참여
조선 후기 문신 김유②, 대정현감 부임…아악원 옮겨
김유비, 1939년 일본 건너가 재산 이뤄…장학회 설립
김유비장학회는 장학회 기금을 출연한 재일교포 독지가 고(故)김유비 여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재단법인이다. 고(故)김유비 여사는 1985년 남편과 사별한 후 전 재산 6억원을 장학기금으로 출연했다. 사진은 2019년 장학증서 수여식 모습.
김유비장학회는 장학회 기금을 출연한 재일교포 독지가 고(故)김유비 여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재단법인이다. 고(故)김유비 여사는 1985년 남편과 사별한 후 전 재산 6억원을 장학기금으로 출연했다. 사진은 2019년 장학증서 수여식 모습.

김위민金爲民생몰년 미상, 문신. 찰방. 예문관 직제학.

1401(태종1) 증광 문과에서 진사과에 급제, 벼슬은 예문관 직제학을 거쳤다. 조정에서는 1426(세종8) 8월에 그를 찰방으로 제주에 파견해 위문하게 했다.

같은 해 11월에 민정을 살피고 제주목사 조희정趙希鼎, 전 정의현감 양맹지梁孟智, 대정현감 이신李伸, 전 교유 배경지裵敬之, 검률 견지지堅枝持, 전 교수관 이정문李正文, 전 목사 김소金素 등의 비행을 조사했다.

김위민이 제주의 민정을 조사한 내용은 제주목사 조희정이 형벌을 남용하여 사노私奴 홍룡洪龍을 죽였고 진상품 수납에 부정사건이 일어나 사노 김록金祿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사비 식분式分을 강제로 결혼시킨 일도 있었다

김위민은 민정을 조사하고 다음의 폐단 10조항을 조정에 보고했다.

김위민이 보고한 10조항은 토호들의 양민에 대한 작폐, 진상물 남징濫徵의 폐단, 감귤 수납에 관리들의 부정, 대처승의 폐풍, 교수관·교유·검률 등의 부패, 아전들의 작폐 및 임용 불공정, 지방제도와 관리제도 개혁, 유녀안遊女案을 폐지하고 유녀란 명칭을 없이 할 것, 축산업에 대해 권호權豪의 횡포, 진상품을 보내면서 사물私物·사마私馬를 끼어 보내는 폐단 등이었다.

제주지역 대표 억새 명소인 새별오름. 새별오름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몽골의 잔존세력인 목호(牧胡) 토벌의 전적지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제주지역 대표 억새 명소인 새별오름. 새별오름은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몽골의 잔존세력인 목호(牧胡) 토벌의 전적지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김유金庾①:?~1386(우왕12), 고려 무신. 제주 목호를 평정한 장군. 본관 김해.

1362(공민왕11) 강릉도병마사江陵道兵馬使가 되어 홍건적을 격파하고 수도를 수복한 공으로 이듬해 2등 공신에 올랐다.

또한 흥왕사興王寺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반공민왕파의 책동으로 충선왕의 서자 덕흥군德興君을 고려국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절개를 지켜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귀국후 밀직부사에 오르고, 추성익조공신推誠翊祚功臣이란 호칭을 받았다.

1365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덕흥군을 송환해 줄 것을 청하려고 했지만 원제元帝가 이미 본국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듣고 돌아와서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됐다.

다음 해인 1366(공민왕15) 10, 전라도 도순문사都巡問使로서 모병, 선박 100척을 이끌고 제주의 목호 토벌작전을 펼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367년 제주 목호들의 횡포가 심해 고려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살해되기도 해 다시 김유가 목호를 토벌하려 했다.

이 일이 원나라와 고려와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자, 고려에서는 김유의 작전은 목호 토벌이 아니고 왜구를 소탕하기 위한 전투 행위라고 원나라에 알렸다.

또 전예에 의해서 목호가 기른 제주말은 원나라로 수송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선에서 외교적인 타결이 이뤄졌다.

1374년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왜구의 병선 40척을 불살라 서북면조선사西北面造船使로 임명됐고, 삼도조전원수 겸 서해교주도도순문사三道助戰元帥兼西海交州道都巡問使가 되어 다시 반란을 일으킨 제주를 평정했는데, 이를 제2차 목호토벌이라고 한다.

김유 대정현감 교지.
김유 대정현감 교지.

김유金柔②:1775(영조51)~1834(순조34), 문신. 대정현감. 본관 광산. 제주목濟州牧 판포리<-> 태생.

김상오金相五의 셋째아들, 김은金隱의 아우인데 당시 형과 더불어 쌍벽雙碧이라고 불렸다.

자는 강중剛仲이고 1814년에 과차科次하라는 명에 의해 실시, 에서 차상次上을 했다.

1823년 제주위유어사 조정화가 科次제주유생시권試券에서 그에게 시험점수로 2을 주었다.

1825(순조25) 경차관 임제홍任濟弘이 입도해 과장科場을 열었을 때에 부로써 문과에 혼자 합격했다. 부제賦題호배계수천자만년虎拜稽首天子萬年이다.

부친 3년상을 마쳐 1829(순조29) 어극御極(순조 등극) 경축 전시殿試에서 문과에 병과로 합격했다.

같은 해 성균관 전적, 1830년 행병조좌랑, 1832(순조32) 9월 초2일 현감에 임명돼 같은 해 10월 홍여일洪麗一의 후임으로 현감에 도임했다. 18342월 재임 중 난치병으로 사망했다.

고(故) 김유비 여사
고(故) 김유비 여사

김유비金幽碑1916(일제강점기)~1995, 재일在日 여성 교포, 독지가, 본관 광산.

남원읍 하례리<예촌->에서 김만일金萬鎰과 문신봉文申逢의 딸로 태어났다.

18세에 나주 김씨 집안의 김응수金應洙와 결혼했다.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34녀를 낳았다. 가난과 어려운 가운데 꾸준히 노력하여 큰 재산을 이뤘다.

1985년 남편과 사별死別, 전 재산 6억 원을 장학기금으로 출연出捐했다.

1995년 일본 오사카에서 김유비장학회를 설립했다.

장학회 이사장理事長 현경대玄敬大국회의원은 199799김유비여사 송덕비를 한라수목원漢拏樹木園 입구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