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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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한국인들처럼 제사에 엄격한 민족도 없다. 추석과 설 때 귀성객들로 서울이 공동화하는 걸 보며 세계가 놀란다.

제사는 뿌리 깊은 의식이다. 유교의 나라 한국의 전통적 추모의식이고 가족행사다. 주희의 『가례』가 그 기본이다. 농업 기반의 집성촌을 중심으로 이뤄진 전근대적 사회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뼛속까지 유교에 절었던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 세상과 연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사의식에서 찾았다. 어떻게든 후손이 제사를 지내야 안도할 수 있으니, 끊기지 않도록 온갖 방책을 강구했다. 대(代)가 끊기면 반드시 친척 중에서 후를 이을 양자 삼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제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아잇적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예전 시골에서 커 올 때, 친척 제삿집에 안 갔다간 어른에게 욕을 사발로 먹었다. 곤밥을 먹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제사를 소홀히 하는 건 곧 가문의 근본을 저버리는 것으로 엄중히 다스렸다.

웬만하면 4대 봉사가 관례로 돼 있지만 제주에선 증조 이후는 지제하는 게 관례다. 나는 이전부터 이 ‘지제(止祭)’란 말에 묘한 의문을 품어 왔다.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이 말은 ‘제사를 그만 둔다’는 뜻이다. 문제가 생긴다.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 어디 가서 물 혼 직(물 한 모금)‘ 얻어먹을 것인가. 그런 신위가 50년, 100년… 장구한 시간으로 한도 끝도 없이 쌓일 텐데, 구천을 떠돌 그 많은 혼령들을 어찌할 것인가. 집안에서 시제(時祭)를 지낸다 하나 그게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를 상정하면 속절없는 일이 아닌가.

이 점, 인류학자들이 예견하고 있다. 제사 풍속이 사그라져 아마 1대봉사로 바뀌리라는 것, 부모 제사로 그칠 것이란 얘기다. 개연성에서 봐야 할 게 할아버지 제사를 지낸다 해도 사촌이 만나야 하는데, 요즘은 사촌끼리도 잘 만나지 못한다. 또 조부모하고도 같이 살지 않아 그리 깊은 정을 못 느낀다. 그러니 자연스레 조부모를 추모하는 제사가 사라질 수밖에. 지금은 다른 종교를 믿을 수도 있다. 굳이 제사로 영생을 얻으려 하지 않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익숙한 제례이니 계속해 부모는 추모할 것이라 한다. 제사의 미래가 흔들린다.

제사 의식 절차가 번거로운 것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진설하는데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제수를 올리는 격식이 정해져 있어 지키도록 강제한다. 그 방위가 실제의 방위와 다른, 제주가 바라보는 곳이 북이고 오른쪽이 동, 왼쪽이 서다. 그뿐인가. 강신까지는 그렇다 치고 제주 재배 후 합문, 철상 음복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히 형식적이다. 편리에 따르는 젊은 세대들 반응이 시큰둥하다.

연휴에 여행객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떼 지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제사도 구속 못한다. 여행지에서라도 제사를 지내면 효자다. 급진적으로 진행돼 온 핵가족화가 제사의 의의를 상당히 탈색시켜 왔다. 아들지상주의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아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딸만 둔 젊은이에게 제사는 어떻게 할 건가고 넌지시 물었더니,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멀지 않아 제사는 없어집니다.” 이렇게 변했다. 사람의 사고도, 의식도 이렇게 달라진다.

제사의 미래가 불확실한가. 하지만 전통적인 풍속이 쉬이 사라지진 않는다. 모실 때까지는 모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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