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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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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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현 수필가

소록도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 k와 만났다. 여러 차례 다녀온 소록도 형편이 궁금하여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근래 들어 시간 가난을 핑계로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후원금을 보태고 있다.

단절과 닫힘의 섬, 소록도小鹿島. 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의 아름다운 섬엔 슬픔의 강이 흐른다. 고립의 장소, 애환이 깃든 사연 많은 섬. 섬 곳곳에는 강제 노역과 착취에 시달린 한센인들의 수난사가 새겨져 있다. 병원 본관을 지나 큰 길 건너편에는 애한哀限의 추모비가 있다.

2008년 여름, 아내는 가족들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보자고 나를 부추겼다. 인성교육 차원에서 학생인 세 아들들에게 어려운 이들의 삶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소록도 환자촌 관계자는 한해가 저물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외로운 노파老婆가 있다면서 가족끼리 따로 봉사하기에는 적당할 듯하다며 허름한 집으로 안내했다. 미리 구입하여 간 재료로 도배와 장판을 깔았다. 손재간이 시원찮은 나에겐 풀을 바르고 도배를 거드는 조수 역할이 주어졌다.

긴 시간 일을 하며 노인의 신산한 삶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록도로 오는 길부터 힘들었다고 한다.

문둥이는 차에 태울 수 없다면서 강제로 내리게 했어요. 하는 수 없이 수백리 길을 일주일 동안 걸어서 도착한 곳이 소록도였습니다.”

소록도는 천형의 땅, 편견과 슬픔으로 얼룩진 감옥이나 진배없는 수용시설이었다.

안내소에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연결된 길은 탄식의 장소인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렸던 길이다.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미감아인 자식과 한센인 부모가 한 달에 한 번 씩 먼 거리에서 눈으로만 만났던 아픔의 장소이다.

노파는 쉬엄쉬엄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듬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전염을 막기 위해 즉시 격리합니다.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미감아인 아들과 나는 수탄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품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첫돌을 전후하여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보내졌다고 합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안부를 모르고 있어요. 어느 하늘 아래에 살아나 있는지……. 이제 나도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꾸 생각이 나고 꿈속에서 보입니다. 그런 날에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 아이 모르게 멀리서나마 한 번만 얼굴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여한餘恨이 없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애절한 그리움과 간절함은 깊어지는지, 노파는 육친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지 못하고 있었다. 노파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길은 없을까.

병흔病痕으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한센인들은 죽는 날까지 그곳에 있어야 한다. 그곳을 탈출하려는 많은 시도는 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탈출에 성공해도 문둥이라는 낙인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잡혀오곤 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였을 터이다. 큰 슬픔은 가슴을 옥죄어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슬픔이 완화되어 통제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능력이다. 일가친척들과 단절된 지가 반세기가 넘은, 사고무친의 외로운 독거노인의 탄식은 지는 노을 속에 처연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노파가 수탄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이를 지금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저무는 인생길의 쓸쓸함과 허허로움에 지쳐,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는 노인의 눈엔 눈물이 그득했다.

지금도 살아 계신지 안부가 궁금했는데 이태 전에 이승을 등졌다고 한다. 부디 힘겨웠던 세상의 짐을 벗고, 슬픔도 고통도 없는 저 세상에서 훗날 그토록 그리던 아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평안한 안식에 드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