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진화(進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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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장 / 논설위원

설평(舌枰)이란 말이 있다. 혓바닥 저울이라는 뜻이다.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이 중수(重水)냐 경수(輕水)냐의 무게를 감식해서 가려 마신 데서 비롯된 말이다. 물에 경중이 있다고 한들 감각으로 그것을 느껴냈다는 것은 대단한 감식력이 아닐 수 없다. 소믈리에(Sommelier) 수준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율곡 이이 선생도 대단한 설평을 가졌던지 가벼운 물은 덕심(德心)을 해친다 하여 무거운 물만 마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둥근 물이 있고, 모난 물이 있어 둥근 물은 술 빚는데 좋고, 모난 물은 약 달이는 데 좋다 하여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대 과학으로도 물의 분자구조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의 물에 대한 변별력은 놀랍기만 하다.

더욱이 옛 한양 사람들은 한강물 가운데 윗물도 아니요, 아랫물도 아니며 또 좌우의 가에 치우쳐 흐르는 물도 아닌 강심(江心)에 흐르는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삼았는데 이를 우중수(牛重水)라 했다고 한다. 인왕산에서 흐르는 개울물을 백호수(白虎水), 삼청동 뒷산에서 흐르는 개울물을 청룡수(靑龍水),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주작수(朱雀水)라 불렀고, 명문 집안에서는 장 담그는데 청룡수, 머리 감는 데는 주작수, 술 빚는 데는 백호수를 쓰는 방식으로 물을 가려 썼다고 한다.

이 물을 성안 사람들에게 배달하는 시스템이 물 도가(都家)였는데, 배달 이권이 대단하여 왕가나 세도가와 연줄 없이는 도가의 이권을 차지할 수 없었다 한다. 지역별 도가가 있고 청룡수 도가, 백호수 도가니 하여 물의 품질을 가려 단골집에 배달하는 용도별 도가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생수시장이 개방되어 다양한 물을 접할 수 있지만, 예전부터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국내외 생수를 비롯한 음료 제품은 11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쇼핑몰, 편의점 등의 창구에서 어떤 물을 골라 마셔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마트 워터(smart water)라는 제품이 대대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벌이고 있었다. 필자가 실제 음용을 해보았는데, 여타 제품과의 차이를 찾아내기가 어려웠고 특이점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수 제품은 계속해서 출시되고 판매되는 것을 보면, 물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그만큼 다양하고 필수적인 것에 나아가 절박하기까지 한 것 같다.

앞서 얘기한 우리 선조들의 다양한 물의 쓰임새를 구분한 연유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물은 본래 살기 위해 먹던 필수재임을 떠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깨끗한 물을 찾고, 보다 좋은 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한 인류의 욕구는 지금의 트렌드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이 물에 스마트란 표현을 쓰는 것도 좋은 물, 건강에 도움을 주는 물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사례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물에 대한 정의는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물질임을 넘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선택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제주에는 청정한 수자원이 풍부하다. 이미 시장에서 많은 소비자에게 좋은 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물에 대한 욕구가 변화하고 있고, 시장의 트렌드가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청정한 물로서만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에 대한 연구개발이 절실하다 하겠다. 물의 진화에 대한 예측은 당연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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