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유서깊은 수도서 만나는 비운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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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트레킹 (上)
시내 가운데 에든버러 캐슬
메리 여왕·전쟁 등 흔적 보존
도심 신·구시가지로 나뉘어
과거·현재 공존하는 분위기
한나절 트레킹 만족도 높아
에든버러 도시 한가운데 있는 ‘에든버러 캐슬’. ‘캐슬 록’이라 불리는 단단한 바위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캐슬에 오르면 에든버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에든버러 도시 한가운데 있는 ‘에든버러 캐슬’. ‘캐슬 록’이라 불리는 단단한 바위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캐슬에 오르면 에든버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25년 전 개봉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당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잉글랜드에 대항한 스코틀랜드인들의 투쟁이 박진감 넘치게 감동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역사에 묻혀 있던 윌리엄 월리스라는 켈트족 인물이 멜 깁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도 됐다

스코틀랜드 하면 단순히 영국의 북부를 일컫는 지역 이름으로만 인식되기 쉬웠지만, 나름의 아픈 역사를 가진 전혀 다른 민족임을 영화 한 편이 새삼 일깨워줬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합병된 건 1707년이다. 독립 영웅 윌리엄 월리스가 붙잡혀 처형된 지 400년 만이다

오랜 갈등의 세월을 거쳐 두 민족이 통합에 이르렀던 길목에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비운이 있었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메리 여왕의 이야기는 영화 골든 에이지에서 다뤄지는 등 역사의 라이벌 소재로 많은 예술작품들에서 등장했다.

잉글랜드에 망명해 있던 여왕 메리는 런던탑에 갇혔다가 끝내 참수 당했다. 생후 9개월에 스코틀랜드 왕좌를 이어받은 후 햇수로 45년 만이었다

20대 중반까지는 프랑스 왕비와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화려한 삶이었지만, 권력 투쟁에 밀려 잉글랜드로 망명한 20년 동안은 감옥생활이나 다름없었다

불행한 여인의 아들은 그러나 16년 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최초 통합 군주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자식 없이 죽은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어, 메리의 친아들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으로 추대됐다

이 왕위 계승이 100년 후 두 민족이 하나의 왕국 그레이트브리튼으로 합쳐지는 발판이 됐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불운이 후세 대영제국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에든버러는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유서 깊은 수도였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캐슬 록이라 불리는 단단한 바위산이 자리하고, 그 위에 에든버러 캐슬이 우람하게 버텨서 있다

시내 어디서든 그 자태가 웅장해서 외부의 어떤 힘으로도 허물 수 없을 듯 한 견고함을 드러낸다. 역사가 있는 중세의 여느 도시가 그렇듯 에든버러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한나절 시간으로 구시가지 전체와 신시가지 일부를 천천히 둘러보는 도심 트레킹이 에든버러 여행에서는 만족도가 높다

에든버러 캐슬을 시작으로 올드타운 도심과 홀리루드 궁전, 칼튼힐, 프린세스 스트리트 공원으로 이어지는 순환 코스다. 직선거리는 7에 불과하지만, 캐슬과 공원 안 이곳저곳을 둘러봐야 하기에 실제 걷는 거리는 10에 가깝다

전통 복장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들.
전통 복장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들.

에든버러 캐슬에서는 제일 먼저 켈트족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동상을 만나게 된다.

캐슬에 오르면 대포들이 도열한 포대 아래로 에든버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북해바다 쪽으로 넓게 펼쳐진 지역이 신시가지이고, 성 바로 아래가 구시가지 일대다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성이 얼마나 난공불락일지 실감할 수 있다. 캐슬 내 로얄팰리스에는 비운의 여왕 매리 스튜어트의 자취가 보존돼 있다

잉글랜드와의 최초 통합 군주가 된 아들 제임스 6세를 낳았던 방과 불행했던 여왕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조형물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스코트 켈트족이 겪은 수백 년 전쟁과 평화의 흔적들이 성 전체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다

성을 내려오면 동쪽으로 곧게 구시가지가 펼쳐진다. 길 양편으로 즐비한 카페와 레스토랑, 옛 왕국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대형 상가나 박물관 등의 명소로 탈바꿈해 올드타운을 이뤘다.

애덤 스미스 동상.
애덤 스미스 동상.

시장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던 애덤 스미스(Adam Smith·1723~1790)의 동상도 거리 한복판을 차지했다

서울의 인사동과 명동을 합쳐 놓은 듯한, 옛날과 오늘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성 아래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의 1.6의 길은 옛날에는 귀족들만 걸을 수 있어서 로열마일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영국식 계량 단위인 마일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로얄마일의 끝 지점인 훌리루드 궁전은 중세 이래 스코틀랜드 왕족들이 살던 곳이다

지금은 영국 왕실의 스코틀랜드 거처로 쓰인다.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여름마다 와서 쉬었다가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글·사진=이영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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