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 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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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에서 2km쯤 떨어진 대초원이다.

푸른 하늘을 어깨 위로 받치고 있는 거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바오바브나무를 찾아갔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동구 밖 팽나무를 닮은 고목이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안내판을 보니 빅 트리(THE BIG TREE), 바오바브(Adansonia Digitata), 수령 10001500이라 적혀 있다. 주위에는 코끼리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망을 둘렀고, 맞은편에는 까만 피부색 예닐곱 원주민들이 자리를 펴놓고, 원시 부족의 마스크들과 돌조각, 흑단 조각 기타 민속품을 팔고 있다. 그 앞 언덕을 남아공으로 향하는 대형 트럭들이 올라가며 힘겨운 듯 요란한 엔진소리를 낸다.

천천히 고개를 젖혀 올려다본다. 아파트 8층 높이에 밑동이 18m 넘는 우람한 거목(巨木). 10여 미터 멀리서도 온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 가까이 다가서자 압도하는 분위기에 여섯 자도 못 되는 키에 우거(寓居)의 삶을 살다가는 인생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한다.

빅토리아 폭포 거목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나무는 최초의 토착인들이 이곳에서 경작하기 훨씬 전부터 자라고 있었다. 13세기에는 그 주위가 토칼레야의 무쿠니 족장사회의 수도 중 하나였고, 무쿠니 영매들이 공동체의 조상 신령과 카온데족 신의 영혼을 중재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통신 시설이 없던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유럽인에게 인기 있는 야영장이었고,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비롯한 영국의 탐험가, 카라반, 박물관 수집가 등에게 기착지이기도 했다. 일행이 만나기로 정한 날짜에 오지 않으면 빅 트리의 수피에 다녀간 날짜와 이름을 새겨 놓고,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곤 했다. 이 거목은 온갖 질병과 자연재해의 두려움에 걱정하는 나약한 토착인들에게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 ‘괜찮아, 모든 게 잘 될 거야’) 하며 위로하는 어머니요, 이방인에게는 쉼터요 만남과 소통의 장소였으리라.

도대체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생존해왔을까. 주변의 수많은 식생과 함께 우주의 입김으로 호흡하며, 햇살과 별빛과 달빛, 비와 이슬, 새와 벌레몸에 와 닿으면 친구처럼 받아들인다. 아늑히 들려오는 빅토리아 폭포의 천둥 치는 소리를 듣고, 짐승들이 잠든 고적한 밤이면 별님 달님과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으리라. 우기 다섯 달 동안에는 흙 속으로 뿌리를 내려 사방에서 수천수만 리터의 물을 모아 스폰치 같은 줄기에 저장하고, 건기가 오면 기공을 조금씩 열어 물을 아끼면서 가뭄을 살아간다. 아프지 않고 사는 생명체가 없듯, 빅 트리도 때론 병고를 겪지만 줄기 안에서 묵은 찌꺼기를 스스로 비워내어 건강을 회복한다. 몸과 마음의 비움이 일천오백 년 장수의 비결임을 말해주는 듯.

바오바브는 식물의 씨앗을 품어 싹트게 하고, 동물들에게 열매와 그늘을 내어준다. 잎과 열매에는 오렌지보다 여섯 배나 많은 비타민 C, 우유보다 세 배나 많은 철분이 들어 있어 사람들에게 건강식품으로 사랑을 받는다. 옛 원주민들은 이 나무에 구멍을 뚫어 주검을 매장하기도 하고, 남아공의 림포포에서는 줄기 가운데 썩어서 생긴 공간에 와인바를 차려 관광객을 맞는다. 바오바브는 줄기??열매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결국엔 무()로 돌아간다. 해서 아프리카인들은 바오바브가 죽으면 은혜에 감사하며 어머니처럼 장례식을 치렀다.

5천년을 산다는 바오바브나무. 안타깝게도 빅 트리는 성장을 멈췄다고 한다. 때마침 이웃 나라 나미비아, 보츠와나 등에서 지난 십 년 동안 10002000년 된 여섯 그루가 말라 죽었다는 비보에, 재선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간 제주의 소나무가 오버랲 되며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과연 무엇이 어머니 나무를 죽음의 그늘로 몰아가고 있을까. 일천오백 년 세월, 한결같이 한 자리에 직립한 채 하늘의 순리대로 인내하며 살아온 빅 트리를. 식생과 인생의 숱한 희비애락(喜悲哀樂)의 사연을 품은 채 이제 본질로 회귀하는 것일까. 천수(天壽)를 누리며 삶이 버거운 인생들에게 하쿠나 마타타”, 무언의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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