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을
이런 사람을
  • 제주신보
  • 승인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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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새해가 열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새것, 새로움의 의미가 특징 지을만한 어떤 것도 아닌 채로 지난다 해도, 그것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는 자체만으로도 늘 설렌다. 그 설렘은 삶에서 희망이라는 활력소가 되어, 일상에서 소소하게 부딪히며 불편하거나, 마음 상하는 일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때론 상흔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

이제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는 삶에 강한 긍정의 힘으로 작동하며 새로움에 대한 의미를 재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별 의미 없이 지난다 해도 늘 설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긍정의 힘은 또 다른 부정인 것과 대치되면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도록 강한 의지와 함께 정서적 안정과 지지에도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이야 아이를 너무 안 낳아 사회를 넘어 국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말과 표어가 사방팔방에 붙어 나풀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셋만 되어도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되는 등, 불이익을 받던 때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픈 일이다. 사회적 정서에서 오는 분위기라는 것은 참 무섭다. 흐름에 맞춰 그 당시 아이들은 두 명이 대세였으니 말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여 아들이 있어야 된다는 그 당시 정서로 한 친구가 딸 둘을 두어 심적 중압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고민 끝에 병원을 다녀와야 하는데 아이를 봐줄 사람도 딱히 없고, 같이 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같이 따라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 호통 치듯 큰 소리가 나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친구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왔다. 우리 애와 그 친구 딸 둘도 같이 데리고 있던 터라 엄마 얼굴을 보더니 큰 소리 내며 울고, 우리 애들은 덩달아 부조하듯 울어 순간 병원 복도는 생난리였다.

얼른 밖으로 나와 애들한테는 과자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병원 근처 나무 그늘에 앉아 들은 이야기는 그랬다. 남편이랑 밤새 의논 후 중절이란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산모 몸은 생각 않느냐, 그렇게 하면 얼마나 몸이 상하는 줄 아느냐’고 얼레다, 급기야 호되게 한 소리 들은 것이었다. 친구 마음 달래느라 ‘돈 받고 그냥 해주면 될 일을…’하며 어색하게 말로 부조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친구는 원하던 아들을 낳았다. 지금 정서로야 웃긴다 하겠지만 그때의 정서로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이십여 년이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친구는 해묵은 이야기를 건져 올리듯 말을 한다. 그때는 부끄러운 마음에다 자존심도 상했는데 곱씹어 보면 그렇게 당당하게 돈보다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고 소신껏 말을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 것 같다며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새롭다는 것에 기대어 올 한 해, 시간을 같이 나눌 인연들은 친구의 말처럼 실리보다 조금은 대의에 더 가치를 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망에서 자기 소신과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러다 그 언젠가 내 친구의 일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라도 문득 떠올리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 그런 향기를 품은 사람을 만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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