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입춘방(立春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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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1년 24절기 중 첫 번째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쓰이는 24절기는 입춘이 시작이요, 대한(大寒)이 끝이다.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에서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1년을 24개로 쪼개 계절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다. 2016년엔 중국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시기에 도입돼 농사를 짓는 데 널리 사용됐다. 여기에 제외된 삼복(초복·중복·말복) 등은 잡절(雜節)이라고 한다.

입춘의 ‘立(입)’은 원래 땅에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다. ‘立’자의 아래 가로획(一)은 대지를 나타낸다. 입춘이나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 등에 ‘들 입(入)’이 아닌 ‘설 립(立)’을 쓴 것도 농경문화와 대자연, 그리고 인간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속담에 “입춘 거꾸로 붙였나”라는 게 있다. 정반대로 간 것을 말한다. 입춘 뒤 날씨가 입춘 같지 않고 몹시 추운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사실 요즘 날씨는 ‘제철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알면서도 철없게 구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날씨로만 보면 입춘은 진작 왔다. 지난달 7일 제주의 낮 최고기온은 23.6도를 기록했다. 1923년 제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월 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다. 소한(1월 6일)과 대한(1월 20일) 사이인데도 철쭉과 유채꽃이 만개했다. 겨울 추위를 상징하는 삼총사 격인 입동과 소한, 대한이 이름값을 못 했다. 사시사철 법칙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올해 입춘은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우한 폐렴)이 확산하면서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이다. 1999년 이후 매해 펼쳐졌던 탐라국 입춘굿 놀이는 22년 만에 처음으로 취소됐다. 도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에 제주를 여행한 후 귀국한 중국인은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바이러스가 세상의 지배자인 듯하다.

▲입춘이 되면 입춘방(立春榜)을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에 써 붙인다. 방(榜)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하여 길거리에 써 붙이는 글’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대표적이다. ‘새봄이 시작되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올해의 입춘방은 아무래도 ‘신종 코로나 극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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