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추억을 소환하다
상식의 추억을 소환하다
  • 제주신보
  • 승인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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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순 수필가

새내기 중학생이 되는 손자에게 일반상식 책을 한 권 사주려고 오랜만에 동네 서점을 찾았다. 그런데 서점은 덩그러니 간판만 걸려있고 빈집이 되어있었다. 경영난으로 얼마 전 폐업했다고 한다. 과거 직장 다닐 때는 승진시험을 준비하며 자주 들러 수험서를 샀는데, 폐업이라니 측은지심이다. 전자통신 기술이 발전하여 온라인 세상이 되었지만, 그간 서점에서 책 한 권 구매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주위를 둘러봐도 서점은 없고 통신기기 판매점을 비롯해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점포만 즐비하다.

시내버스를 타고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W 서점으로 갔다. 이 서점은 1945년에 개점하여 지금까지도 전통 서점의 명맥을 잇고 있다. 고교 시절 참고서를 사려고 가끔 들르던 곳이다. 일반상식 코너로 갔는데, 중고교 수준의 책은 없고 공사·공단 등 취직용 수험서뿐이었다. 살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중학생에게 대학생 수준의 책을 사줘도 될까. 읽기나 할까, 또 읽으면 이해가 될까. 학교 공부도 힘들 텐데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지우는 건 아닐까.

갈등이 있었으나 취직 수험서 한 권을 구매했다. ‘요즘은 선행학습과 유치원부터 영어 공부를 하지.’ ‘나도 초등학생 때 중고교 수준의 상식 책을 읽었지.’ ‘그때 얻은 지식이 지금도 남아있어…’ 되뇌며 책은 구매했지만, 책을 손자한테 줄까 말까 또 걱정이다.

중학생에게 성인 양복을 입히는 것은 아닌지, 교육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판단이 어렵다. 책은 아직 손자에게 주지 않고 내가 틈틈이 읽고 있다.

손자에게 일반상식 책을 사주려는 것은 오늘날까지 내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은 상식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농경시대의 궁핍한 농촌에서 우리는 할아버지와 손주까지 삼대가 한 울타리 안에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삼촌이 중학생 때 공부하던 ‘일반상식’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책을 펼쳐보니 다산 정약용과 목민심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 독재자 히틀러와 무솔리니, 1·2차 세계대전 등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상식들이 흥미진진하게 망라되어 있었다. 며칠이고 계속해서 읽었는데 보면 볼수록 흥미로웠다.

성인이 돼서도 상식 문제를 좋아하면서 요즘 ‘도전 골든벨’ 프로를 즐겨 본다. 출연한 고등학생들이 고차원의 난이도 있는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아주 대견스럽다. 세대를 넘어 프로그램에 심취하며 청소년들과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상식은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되며,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요즘은 전자통신 기술이 발달로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와 새로운 상식 문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현대는 새 기술과 정보 그 자체가 상식이고 지식이다.

올곧은 사람이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상식의 기반 위에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갈망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실종되고 불공정한 과정이 비일비재하다. 지식인의 위선, 신뢰를 잃은 정치, 위정자의 아집에 의한 극단적 진영논리에 사회정의는 길을 잃었다.

과거의 상식은 고전이 되었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은 지식의 근원을 소환하며 혼탁한 작금의 세태를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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