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과 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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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말과 행동을 삼가는 것을 신독(愼獨)이라 한다. 동양 고전 ‘대학’에 나오는 양심의 결의를 함축한 말이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같은 선현들이 후학들에게 강조한 사상이다.

송사(宋史)에선 신독을 이렇게 풀이한다. “홀로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참으로 무서운 다짐이고, 엄격한 자기관리의 주문이다.

흔히 남들이 지켜볼 때는 이런저런 일들을 잘 처리한다. 또 남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선 늘 듣기 좋은 말을 쓰기 일쑤다. 그러나 남들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신독은 뻔뻔한 사람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뻔뻔함을 얘기할 때 얼른 떠오르는 게 정치권이다. 특히 현 정부 실세들은 그런 면에서 다들 한가락 한다. 입법부 수장이라는 이는 평생 일궈온 민주주의 이력을 내팽개치고 국회 편파 운영에 앞장섰다. 아들을 챙기련다는 여론의 시선이 따갑다.

국회의장을 했던 다른 인사는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비판에도 대통령 밑의 행정부 2인자에 들어갔다. 국민을 위해서란다. 그러더니 집권당 대표 하던 분은 무슨 요량인지 장관직을 꿰차고 검찰 손발을 묶는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앞선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압권이다. 미궁에 빠져드는 나라 경제를 두고 지표가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조국에게 뒤통수 맞은 국민들에겐 정의의 가치를 확산시켰단다. 실로 정권 전체가 부끄러움을 애써 외면하는 무치(無恥)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다.

▲거짓말일수록 소리는 또렷하고 진지하기까지 하다. 설마 하던 이들조차 그럴 수도 있겠다 쪽으로 기운다. 허나 한때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조국 사건 이후 이 정부 실세들과 각을 세우고 있는 진중권 전 교수의 어록들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언론플레이로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시민들도 보여주기식 말잔치를 들여다보고 있다.

정권의 실세나 고위 공직자에게 예의와 염치를 말하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뻔뻔한 언동에도 국민에 대한 송구함이 전혀 없다. 큰 감투 값을 하려면 남보다 더한 절제가 필요한 시대다.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다. 신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켜보는 국민이 많다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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