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시대를 꿰뚫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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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노우성 연출, 수키컴퍼니 제작)는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수입산 뮤지컬들과 달리 「여명의 눈동자」는 1990년대 흥행했던 36부작의 드라마를 180분에 장중하게 담아내면서, ‘극단의 시대’를 뚫고 살아낸 민족의 대서사시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기획자는 “어디서부터가, 날 위한 싸움이었을까?”라는 가사를 내걸면서,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그 순간에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하는 시대. 나라를 되찾았지만, 또 다른 싸움에 희생을 강요받는 청춘들.” 그들의 사랑과 삶을 다룬다고 했다. 기획 의도처럼 작품은 ‘여옥, 대치, 하림’이라는 청춘의 움직임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병, 그리고 해방 정국의 좌우익 갈등, 제주 민중의 4·3항쟁, 6·25전쟁 등 고통스러운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 역사를 밀도 있게 체현해냈다.

「여명의 눈동자」는 극단의 시대를 뚫고 가면서 냉전반공과 민족통일 담론의 각축 속에서 성장해온 서사다. 유신체제 속에서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었던 김성종의 소설은 송지나 각색의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역사적 균형감각을 많이 찾게 된다.

소설은 폭력과 성폭력이 난무하는 전형적 성인소설이었다. 최대치는 잔인하고 비겁하며, 위안부 출신의 여옥을 치욕스럽게 여기며 숨어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인물이었다. 박정희 정권 속에서 냉전반공을 전면에 내걸고 역사를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용했던 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을 드라마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객관화하려 노력했다. 드라마에서 최대치는 순수하고 신념이 있는 청년이며 여옥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인물로 재탄생된다.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제주 4·3사건을 다룸으로써 많은 이들이 남도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뮤지컬은 드라마보다 더욱 세련된 역사 감각을 찾았다. 해방 정국의 좌우 갈등의 ‘팩트’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제주 4·3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노래와 내레이션을 통해 정확히 그려냈다. 제주 민중이 왜 통일과 자주 독립의 기치를 내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를 온전하게 그리려 노력했다. 뮤지컬이라는 상업적 문화영역에서도 통일담론을 새롭게 구축해나가면서, 극단의 시대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뮤지컬의 서사는 무거운 감이 없지 않지만, 음악은 전체적으로 어둡지 않다. 오케스트라는 웅장하면서 세련되었다. 김지현, 최우리, 박정아, 테이, 오창석, 온주환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으면서 뛰어난 가창력의 탤런트나 가수들이 출연해 고품질의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서정적인 한국화를 기조로 한 배경, 높게 올라간 무대장치는 무대미술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우리는 왜 이처럼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야 하는가? “역사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은 그것을 부단히 논의하고 반성해 기억의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것”(윤평중,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극단으로만 치달으려는 요즘 정국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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