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상무
술상무
  • 홍성운
  • 승인 200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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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술을 참으로 좋아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서인이었던 그는 늘 동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곤 했다.
‘대신으로서 주색에만 빠져 나라일을 그르쳤다’는 것이 동인들의 반격이었고 이로 인해 송강은 명천, 보주, 강계 등지로 귀양살이까지 가야 했다.
그는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시조에서 ‘술 마시는 멋’을 이렇게 노래했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에 거적 덮어 주리혀 매여가나
류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내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숲에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쇼쇼리 바람 불제 뉘 한잔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 우에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어쩌리.’(출전 청구영언)

▲노동부는 최근 간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히 회사 업무상 술을 많이 마셔 발생한 알코올성 간질환도 이에 포함된다.

이른바 ‘술상무’들의 간질환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소주 59병, 맥주 86병, 위스키 1.3병을 마셨다고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인구로 나눈 수치이니 엄청나게 마신 셈이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으로 연간 290억원 정도의 산재보험금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하지만 어찌됐건 그동안 병원 치료에 큰 부담을 안았던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두주불사(斗酒不辭)가 호탕함의 상징이자 대인관계를 가늠하는 척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의 주량이나 기호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남자는 한잔 해야 이야기가 통한다”며 술을 강권하는 경우가 많다.

또 ‘술상무’ 역할을 잘해야 출세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많이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술 문화가 고역일 수밖에 없다.

한국 중년 남성이 대부분 위염이나 지방간에 시달리고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아마도 ‘술상무’로 대별되는 우리나라의 음주접대 문화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술은 긴장을 풀어주고 경계심을 완화시켜 의사소통을 쉽게 해주고 때로는 슬픔을 가라앉히고 기쁨을 배가하기도 한다.

적당히 마시면 혈액 순환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술상무’라는 어휘에는 ‘밀실’ 또는 ‘뒷거래’라는 음습함이 묻어난다.

왜곡된 접대문화가 만들어낸 ‘술상무’라는 이색 직함도 ‘간질환 산재 인정’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투명하고 깨끗하고 공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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