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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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

성질이 온순하며 인내심이 강한 소는 우리나라 농경사회에서 가족과 다름없었다. 한가로운 농촌풍경에 자주 등장하는 소는 농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자녀의 학자금이나 결혼비용을 마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소는 산업사회 이전에는 농업의 주인공으로서 농촌경제의 버팀목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식구(食口)라고 하고, 소를 생구(生口)라고 한다. 한집에 사는 하인을 일컬어 생구라고 했는데, 소를 생구라고 한 것은 그만큼 소를 가족처럼 여겼다는 뜻이다.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해 돋는 언덕 위의 소는 고향의 대명사이자 우리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런 이유로 나라를 잃었던 일제강점기에 적지 않은 화가들이 소를 즐겨 그렸다. 이처럼 소는 고향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이자 공동체를 연결하는 매개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에 소가 등장한 시기는 언제쯤일까. 소가 그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프랑스 남부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벽화에는 광물질과 식물 안료로 소와 다양한 동물군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쇼베 동굴에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은 자신이 키우거나 사냥할 동물들을 그린 것이다. 그 후 소 그림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되고, 형태가 진화된 소는 8500년 전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옛 그림에도 소를 소재한 작품이 다양하다. 목동은 드러누워 잠을 자고 우람한 소는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그린 김두량의 <목우도(牧牛圖)>, 따스한 봄날에 소로 밭을 가는 김홍도의 <경작도(耕作圖)>, 소를 타고 가면서 글을 읽고 있는 노자를 그린 조석진의 <이노군도(李老君圖)> 등이 있다. 현대화가로서 양달석은 소와 목동, 소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소재로 하여 따뜻한 전원 그림을 그렸다. 강렬한 붓 터치로 소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겨 ‘소(牛)’의 화가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중섭의 소 그림은 유명하다.

소는 서양의 화가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피카소는 소를 소재로 <게르니카> 습작들을 그려냈으며,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볼라르 연작>에서는 에로스의 상징으로 황소가 등장한다. 피카소의 <황소머리>는 낡은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을 떼어내어 핸들은 황소의 뿔로, 안장은 황소의 얼굴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피카소의 즉흥성과 예리한 관찰력이 빚어낸 기발한 작품이다. 쾌활하게 그려진 샤갈의 <양산을 든 암소>는 풍요와 친근함으로 상징된다. 이와 같이 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의 매력적인 소재나 주제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농경의 기계화로 인해 일하는 소의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더불어 우리의 일상에서도 멀어지면서 한가로운 농촌 풍경 속 소의 추억도 없어졌다. 소는 이제 인간의 식량 공급의 대상으로 남겨진 채, 화가의 작품에서도 가족과 고향, 민족으로 상징되었던 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변화의 물결에 밀려 우리와 같이 나눈 오랜 정서도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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