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남의 편
내 편, 남의 편
  • 제주신보
  • 승인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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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중학교에 다니는 지인의 자녀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가 좋았어요. 5학년까지만 해도 모두 같이 어울려 놀았어요. 그런데 6학년 때부터 편을 갈라서 자기편이 아니면 같이 어울리지도 않고 다른 편을 공격하는 분위기였어요. 중학교 와서는 전학 온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그룹으로 공격을 당한 적도 있었어요. 이상해요.” 이 어린 학생이 처음으로 마주한 작은 사회, 학교는 정말 이상한모습이었다. 이런 일을 경험한 우리주변의 미래주역들이 어디 이 학생뿐이겠는가?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다. 늦은 나이로 한 공공기관에 입사한 첫날 젊은 직원들이 SNS망을 통해서 한 직원을 공격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소위 편을 짜서 자기편이 아닌 직원을 앞에 두고 SNS망 안에서 서로 흉보고, 비웃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편가르기였다. 그 편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이 직장인은 그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 퇴사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허용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그 내부의 문제가 어디 이것 하나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가? 판단하고 바라보는 모든 관점이 내 편이냐, 남의 편이냐에 맞춰진 진영 싸움, 즉 편가르기에 빠져있다. 국민의 삶과 안위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내 편인가 아닌가, 혹은 나와 연관성이 있는가로 판단하고 있다. 내 편이면 무조건 되고 남의 편이면 무조건 안 된다는 편가르기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사회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앞의 중학생이 말한 이상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이런 정치 양상은 전 국민을 상대로 걸러짐 없이 그대로 보여 지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것이며 우리 국민은 무엇을 느끼고 배우겠는가? 보고 배우는 것만큼 확실한 교육효과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보고 배우고 답습하면서 반복할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자각과 반성이 없다면 말이다.

지금, 아니 어쩌면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고로 어떤 집단이 형성되면 배타적인 모습을 드러내 왔다. 학교나 직장 등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싫든 좋든, 아니 옳든 그르든 그 편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본질을 무시한 내 편, 남의 편가르기는 허망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라 수시로 그 편을 바꿀 수 있다. 세상사 판단의 기준이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가 아니라 이익을 좇는 편가르기라면 말이다. 언젠가 시시비비가 가려졌을 때, 무너질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 수도자의 말이 떠오른다.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미워하다’, ‘무관심하다가 아니라 사용하다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활용하다’, 즉 사용하고 버린다는 뜻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안의 본성을 잘 알면서도, 찰나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스스로 사용하고 버려질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성숙한 민주사회를 꿈꾼다. 평화롭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 이를 이루려면 이제 옹졸한 편견과 대립을 넘어서서 서로 소통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편을 가르되 극단적인 편가르기는 멈추고, 정의롭고 건강한 경쟁을 하자. , 경쟁에 앞서 서로에 대한 따뜻한 공감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