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조선…관광객을 유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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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관아의 역사 탐방
제주목사가 군사·행정·사법 등 모든 분야를 지휘·감독
올해 4월부터 수문장 교대의식·전통무예 시연 펼쳐
제주목 관아는 58동 206칸 규모로 지어졌다. 화재를 대비해 관아 건물은 서로 닿지 않도록 건축됐고 담장을 쌓았다. 지금은 29동의 옛 건물과 시설물이 복원돼 있다.
제주목 관아는 58동 206칸 규모로 지어졌다. 화재를 대비해 관아 건물은 서로 닿지 않도록 건축됐고 담장을 쌓았다. 지금은 29동의 옛 건물과 시설물이 복원돼 있다.
고봉수 기자 chkbs9898@jejunews.com

제주성()은 조선시대(1392~1910) 518년 간 제주의 중심지였다. 성곽 길이는 3에 이르렀고, 바다 방면을 제외해 동문·남문·서문 등 3개문이 있었다.

이 고도(古都)는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에서 다스렸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군사·행정·사법 등 전 분야를 지휘·감독했다. 제주목사는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라는 군직을 겸임, ·해군을 통솔했다.

조선시대 286명이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가족을 데리고 오지 못하는 변방의 수령 임기는 26개월(900)이지만 평균 재임기간은 110개월이었다.

이경록은 제주목사로 6년이나 부임했다. 임진왜란 발발로 이임하지 못했고, 성산일출봉에 성곽을 구축하던 중 풍토병에 걸려 1599년 제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주목사 중에는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한 반면, 폭정으로 원성을 사기도 했다.

기건 목사(재임 1443~1445)는 겨울에도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를 안쓰럽게 여겨 평생 전복과 미역을 입에 대지 않았다.

허명 목사(1814~1815)는 채무로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임시방편으로 차용문서를 만들어줬다. 더 나아가 이 문서를 태우고 무효를 선언해 민초들을 구원했다. 효력이 없는 문서를 허명의 문서라 불리는 이유다.

폭정을 일삼은 목사도 있었다. 1619년 부임한 양호는 탐학이 극도로 심해 백성들은 그를 호랑이 보듯 두려워했다. 벼슬에 쫓겨나도 제주에 남아 행패를 부리던 그는 1623년 사형을 당했다.

인조반정 이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이괄의 난을 일으킨 이괄은 1616년부터 3년간 제주목사로 재직한 바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은 1864년부터 2년간 목사로 재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홍종우는 1905년부터 1년간 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김옥균을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한 인물이다.

제주목관아가 매년 4~10월에 열고 있는 수문장 교대 의식
제주목관아가 매년 4~10월에 열고 있는 수문장 교대 의식

제주목 관아(국가사적 380)500년간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현재 29동의 옛 건물과 시설물이 복원됐다.

일제는 전국 해안과 내륙 등 요충지에 세워진 읍성(邑城)이 한민족의 단합된 힘과 항전의 상징으로 여겼다. 1910년 조선총독부의 1호 법률인 조선읍성 훼철령에 따라 읍성들은 철거돼 대부분 제 모습을 잃었다.

일제는 제주항 축항공사를 이유로 제주성 3면의 성담 대부분을 바다에 쓸어 담아 방파제 매립재로 사용했다. 현재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일부에만 제주성지(濟州城址)가 남아 있다.

제주목 관아와 옛 제주성 일대는 광복을 지나 1980년대까지 제주도청·법원·검찰·경찰·세무서 등 관공서가 들어섰고, 은행·증권회사가 자리 잡은 제주 최대의 번화가였다.

그러나 관공서가 속속 이전했고, 2009년 중앙로에 있던 제주대학교병원마저 떠나면서 원도심의 화려했던 옛 영광은 석양에 기울고 있다.

여느 원도심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줄고 젊은이들은 살지 않으면서 도심 공동화(空洞化)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는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역사·문화 자원을 덧입히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목 관아에서는 해설사 4명이 배치돼 제주목사의 일대기와 제주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또 수문장 교대의식과 전통무예 시연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는 4월부터 시행된다.

제주목 관아와 인접한 동문재래시장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제주목 관아와 인접한 동문재래시장 야시장은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제주목 관아를 따라 칠성로 상점가에 이어 동쪽으로 중앙지하상가, 동문재래시장, 탐라문화광장을 탐방하는 코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동문야시장에는 제주의 신화와 캐릭터를 주제로 흑돼지와 전복·새우 등 다양한 청정 재료를 활용한 퓨전음식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171만명이 방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에도 야시장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시는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차 없는 거리를 오는 4월부터 일요일마다 운영할 예정이다. 제주목 관아 옆 관덕정을 중심으로 중앙로사거리~서문사거리 500m 구간에 낮 12~오후 8시까지 8시간 동안 차량 통행을 제한할 방침이다.

고희범 제주시장은 전 세계 400여 개 도시가 차 없는 거리를 운영, 차가 아닌 사람 중심의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일요일마다 제주목 관아 일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노천카페를 운영해 시민과 관광객들이 걷고 즐기는 공간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글=제주新보 좌동철 기자
사진=고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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