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연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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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 수필가

연애를 안 한지가 오래된 것 같다. 남편과 결혼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되었다. 그래서인가 연애라는 감정이 무뎌진 것 같았는데, 요즈음 내가 설레기 시작했다.

명절이 코앞에 다가와 오랜만에 두 딸과 만두를 빚고 있었다. 작은 딸이 얼마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쿨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마음 아파서 이불 쓰고 있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듣고 슬그머니 남편이 나오더니,

너희 엄마도 남자친구가 생겼나봐.”

아빠, 무슨 말이야?”

제주도에 꿀단지를 묻어 뒀나봐.”

나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벌써 그런 세월이 해가 바뀌어 두 해가 되었다. 세간도 제법 늘어났고, 외로움을 느끼지 못 할 만큼 친구도 생겼다. 양팔저울처럼 반은 제주 토박이 친구들이고, 다른 반은 나와 같은 외지인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빈곤할 때, 소통의 막힘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일주일마다 서울과 제주를 다녔는데, 언제부턴가 상경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에 가곤 했다. 등산복을 구입하는 일이 잦아졌고, 가끔 남편이 제주에 오면 새 옷이 옷장에 걸려있는 것을 자주보곤 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친구가 있다. 처음에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요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들 떠 있었다. , 목요일만 되면 행복해지고 있는 나를 보곤 한다. 화요일 밤부터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연애를 할 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엔돌핀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마음이 분주했다. 아침 일찍 잠도 설쳐가면서 얼굴에는 분단장을 했다. 평소에는 잘 바르지도 않는 립스틱을 찾아 발라보기도 한다. 꽃무늬가 있는 등산복을 찾아 입는다.

그리고 예쁜 등산모도 쓰고 길을 나선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그와 사진을 찍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침부터 그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 좋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보는 순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이 귀에 걸려 있음을 느꼈다. 그 날, 그를 두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를 보내는 별리의 아쉬움을 알았다. 헤어지고 집에 오면 자꾸만 그가 생각났다. 그를 만나고 온 날은 남편의 잔소리에도 한없이 상냥했으며 오히려 기분이 상승되어 잘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짜증났던 내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의 품에 안기어 있다 보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딴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내 나이 오십에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억새가 은빛 바다를 방불케 하는 가을날이었다. 바람이 나와 그의 만남을 방해했지만 장애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 때문에 그와 더 돈독해졌었다.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그는 멋있게 단장을 했다.

그의 모습은 하얀 눈 꽃송이들이 참나무 가지위에 앉아 백설천국을 만들었다. 나의 순수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게 도와주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그의 겸손함이 보였다. 나를 들꽃 나라에 초대하여 나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웠다. 녹음이 짙은 여름, 몸이 힘들고 지쳐 있는 나를 그의 품에서 쉬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바람과 함께 속삭였다.

어제는 남편이 온다는 말도 없이 찾아왔다. 요즈음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걱정이 되어 약을 가지고 내려 온 것이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지만, 말도 없이 내려 온 남편이 부담스러웠다. 왜냐면 남편이 돌아가는 수요일 아침은 그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공항까지 배웅해 달라는 남편의 말이 나의 맘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짜증을 불렀다. 약속 시간이 임박하여 먼저 집을 나섰다. 뒤 따라 나오는 남편에게.

여보, 도착하면 전화해.” 못들은 척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든 말든.

그들은 삼백 육십 팔개나 된다. 나는 아직 다 만나지 못했다. 또한 나는 성격이 까다로워서 처음 만나서 연애의 감정이 생기는 것이 힘들었다. 지난번에 만났던 그를 오늘, 또 만나러간다. 그의 이름은 열안지(列雁旨)오름이다. 열안지는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했다. 흐린 날씨인데도 멀리 보이는 모습이 기러기를 닮은 듯 보였다.

흔히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원앙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단청을 들인 기러기 한 쌍을 신혼부부한테 선물하기도 한다. 그 의미는 평생 부부로서 서로를 바라보겠다는 일편단심의 뜻 이란다. 삼십 년 전에 큰 언니가 기러기 한 쌍을 선물해줬던 것이 생각나면서 아침에 그리 보낸 남편에게 내심 미안했다. 그는 남편에 대한 내 마음까지도 이해해줬다. 그는 삼각관계 속에서도 묵묵히 받아줄 뿐 단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면서도 남편 걱정을 하는 나에게, 시샘하지 않았고, 보채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했고, 복잡했던 마음을 위로 해 주었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그는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제주에 내려온 것은 제주 오름을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오름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눈으로만 보고는 알 수 없었기에 다녀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삼년 전, 다리를 다쳤기에 힘들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도 있었고, 외지인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었다. 쉽지 않았던 제주 생활이 요즘에는 몸에 맞는 옷이 되어가고 있다.

오름, 내가 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벌써 두 해가 되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원동력을 선물해 주기에 그와 헤어지가 힘들다. 내가 살면서 후회 없는 선택이 있었다면 그와 연애를 택한 것이다. 이기적인 나를 반기는 그가 그리운 오늘이다. 한없이 주기만 하는 그에게 미안하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마음에 그를 담아 나의 글에 오롯이 표현하는 것. 오늘도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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