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박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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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날아다니면서도 새가 아닌 박쥐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부정적 이미지로 기록했다. 이솝우화 등 옛이야기에 박쥐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야비한 동물로 묘사되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지금도 박쥐는 서양에선 마녀·악마·액운을, 동양에선 부귀·행운·장수를 상징한다. 우리 선조들은 도자기, 자수, 공예품은 물론이고 그림에도 박쥐 문양을 새겨 넣었다. 심지어 박쥐의 습성을 본떠 복(福)자를 거꾸로 매달아 주렁주렁 복이 달리기를 기원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이익을 좇아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는 인물을 박쥐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작 박쥐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의식에 왜곡이 쌓인 것이다.

▲그에 대한 앙갚음일까. 박쥐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근래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의 근원이 박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쥐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박쥐는 2003년 사스와 2012년 메르스, 2014년 에볼라 등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이 생길 때마다 주범으로 지목됐다. 그래선가 박쥐는 ‘바이러스의 저수지’로 불린다. 200여 종 바이러스의 1차 숙주다. 그러나 박쥐 스스로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비행할 때 체온이 높아지면서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특유의 면역체계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박쥐 식용 습관을 발병 원인으로 본다. 바이러스의 저수지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 재앙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쥐에게 감염병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박쥐를 인간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생물종의 하나로 꼽는다. 우선 해충 퇴치 능력이 탁월하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 3분의 1에 해당하는 모기를 잡아먹는다. 또 꽃가루를 옮기며 수분을 도와준다.

인공위성과 레이더의 물체 식별 원리도 박쥐의 초음파 능력에서 빌려왔다. 2008년 영국 텔레그래프가 정한 ‘세계에서 가장 귀한 동식물 5가지’에 영장류, 벌, 균류, 플랑크톤과 함께 박쥐가 이름을 올렸다.

이쯤이면 박쥐를 무턱대고 미워할 게 아니라 공존의 길을 모색할 일이다. 무분별한 식탐이 바이러스의 역습 부른 건 아닌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모름지기 길흉화복이 인간사일진대 박쥐를 탓하는 것 자체가 덧없음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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