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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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물이나 불, 또는 바이러스가 지상의 삶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지구의 온난화가 지속되면 북극의 얼음만 아니라 지상의 물 90%를 품고 있는 남극의 얼음이 녹고, 그 결과 상승하는 해수가 범람하여 농지나 도시들이 해저 유적이 될 것이라 한다.

대규모의 상전벽해 현상에 대항해서 도시 둘레에 제방을 쌓거나, 지중해를 거대한 댐으로 만들어 바닷물을 가두거나, 기존 도시를 포기하고 물 위에 뜨는 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방안들이 구상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렇게 될 무렵이면 바닷물은 넘쳐나도 남은 땅에 생명을 줄 담수는 줄어들어 희귀해질 것이다.

불로 종식된다 함은 대규모 전쟁으로 핵무기가 사용되면 인류는 절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장구한 세월 뒤에는 거대해진 태양이 주변 행성들을 흡수하고 폭발함으로써 우리 태양계 자체가 먼지로 변한다고 한다. 그런 세월이 흐르기 훨씬 전에 인류는 이미 지상에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바이러스들은 언제 어떻게 인류를 공격할지 모르는 치명적인 잠재요인이다. 감염된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 도시가 고립되고, 온 세상이 전염병의 확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바이러스와 전쟁 중인 지금도 특별한 대응 수단이 없다. 항공모함, 초음속 전투기, 미사일 등 살상 위력이 막강한 전쟁무기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무용지물이다.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세대는 위기감보다 미래의 희망에 비중을 둔다. 실제로 나무 심는 정책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내일 죽더라도 오늘 나는 돈을 거머쥐고야 말겠다고 마음 다지는 사회가 된 것 같다. 숲을 베어내고 물을 뽑아 팔면서 초록색 페인트로 친환경이라고 쓰면 청정해지는 듯 착각하고, 세금으로 사는 정치가들 중에는 국민이나 나라가 어찌 되든 자신과 당의 이익만 추구하느라 궤변만 늘어놓는 듯하다.

노인들은 여전히 손자가 다시 아들을 낳아서 증손자가 집안의 대를 이어가기를 바라지만, 젊은이들은 암담한 미래의 전망 앞에 자식을 낳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갖는다. 후손들에게 닥칠 갖가지 위기가 기다리는 세상, 개인적 삶만 끝나게 마련된 것이 아니라 세상도 결국은 종말을 맞을 것이라니 희망이나 이상, 대를 잇는다든지 모두 다 부질없어 보인다.

인류문명은 가지가지 전쟁과 질병과 부조리한 사고로 여러 가지 희생을 치렀다. 그러면서 오래 이어지던 악습도 점차 교정되었다. 아시아에 뿌리 깊던 남존여비 전통도 약해져서 딸들도 축복과 교육을 받는 사회로 바뀌고, 취업할 때 똑똑한 여자보다 무던한 남자를 더 원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면접관도 이제는 없다.

성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가 자칫 남성 혐오처럼 오인되어서 일부에서는 여성혐오 증상도 나오고 있으나 앞으로 인식능력과 수용의 폭이 늘어나면서 조화로운 인간관계는 더 쉬워질 것이다.

바이러스 공포를 겪으면서 우리가 더 성숙해진다면 다행이다. 피어날 때 홍조를 띠고 햇살에 반짝이던 억새는 시간과 바람에 맞서서 마르고 서리 맞아 흰 머리칼처럼 푸석해지고, 눈 쌓인 벌판에 봄이 멀지 않은 날 바람타고 사라지나, 그 생명의 싹은 다시 돋아난다. 우리도 위협과 좌절 속에 삶과 죽음의 주기를 이어가고, 새 출발하는 후손들은 포기하지 않고 각성된 안목으로 그 생존을 오래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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