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된 ‘재갈 물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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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버럭 화를 내는 것을 폭노(暴怒)라 한다. 인생의 교과서라는 명심보감은 이를 가장 경계해야 할 일로 여겼다. 특히 리더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했다.

석천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그의 저서 ‘3분 고전’을 통해 명심보감에 실린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관직에 있는 자가 가장 경계할 일은 갑작스러운 분노다(當官者, 以必暴怒爲戒). 만약 아랫사람의 일 처리에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事有不可), 마땅히 자세히 살펴서 대처해야 한다(當詳處之). 그러면 어떤 일이든 사리에 맞지 않은 것이 없다(必無不中).’ 분노 조절을 잘하라는 말이다.

반대로 버럭하면 자신만 손해다. ‘만약에 먼저 갑작스러운 분노를 표출한다면(若先暴怒), 이것은 다만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只能自害).’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9일 경향신문에 실린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란 칼럼에 크게 분노했다. 임 교수는 칼럼을 통해 “국민들은 정당에 길들어져 갔다. 이번에는 거꾸로 해보자. 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정당과 정치인에게 알려주자. 국민이 볼모가 아니라는 것을, 유권자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자당을 비판했다며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및 투표 참여 권유 활동 금지 위반 혐의’로 임 교수와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의 비난이 잇따르자 고발을 취하했으나, 대중의 뇌리에 예전의 필화사건(筆禍事件)을 소환시켰다.

언론 매체 등에 집권 세력을 비판하거나 풍자한 글로 처벌 등의 불이익을 받은 대표적인 필화사건으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70년 월간지 ‘사상계’ 5월호에 재벌을 비롯해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빗대어 풍자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시도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라 정권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지하 시인 등 4명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청하고 성찰하면 될 일을 갖고 버럭했다가 비난을 초래하고 있다. 재갈을 물려 입을 다물게 하겠다는 것은 오만이다. 이젠 입을 다물라고 했던 그 입으로 사과해야 할 판이다. 굴욕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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