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디어의 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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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지난 1월부터 2월에 걸쳐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재일한국인 정신과 의사 안극창(安克昌)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이 매주 토요일 9시부터 4주 동안 방영됐다. 안 의사는 6000명 이상이 희생된 1995년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 발생 시, 스스로 재해를 입으면서도 다른 이재민들의 마음 케어에 분주하던 끝에 2002년에 39살의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에서는 많은 이재민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아픔을 함께하려는 안 의사의 모습이 그려져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둘러싼 마음의 갈등도 그려져, 혐한언설이 만연해 보수화나 우경화가 거론되는 일본의 방송계에도 아직 그런 뜻을 품은 제작진이 건재함을 엿보이게 한다.

인터넷상 한국의 보도 프로그램이나 시사전문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일본 언론이나 방송계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소리가 적지 않다. 더구나 진보 성향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런 논조가 눈에 띄고,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에는 일본의 TV 프로그램이 거의 모두가 보수화됐다는 논평마저 나왔다. 일본 언론 미디어의 우경화가 아베정권 하에서 한층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제1차 아베정권(2006-2007년)은 망언이나 스캔들로 매스컴의 집중포화를 맞아 붕괴했다. 이를 교훈 삼아 2012년에 재집권한 아베는 매스컴의 장악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아베 정권의 미디어 전략의 최대의 표적이 된 것은 NHK와 아사히신문이었다. NHK는 일본의 공영방송으로서 정부가 관할하는 특수법인이다. 아베 정권은 이 NHK의 회장으로 모미이 가쓰토(?井勝人), 그리고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 위원으로 모모타 나오키(百田尙樹) 등 역사수정주의자들을 보내면서 NHK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에 대해서는 소위 요시다(吉田) 증언(제주도에서 200명을 강제 연행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증언)이 허위라는 것을 아사히신문이 인정하자, 산케이나 요미우리 등 우익 언론들과 합세해 마치 위안부 문제가 바로 아사히의 날조인 것 같은 인상을 퍼뜨리고, 아사히를 약화했다. 기타 매스컴에 대해서도 간부에 대한 회유책이나 보도 내용에 대한 협박성 간섭 등 다양한 수법으로 통제를 시도했다.

이런 아베 정권의 미디어 전략은 어느 정도 공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정권비판의 논조는 시그러졌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소위 ‘촌탁(忖度)’이나 ‘자주 규제’가 두드러지게 된다. 하지만 일본 미디어가 모두 우경화되고 친정부가 된 것은 아니다. 전국지는 마이니치신문 등이 리버럴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고, 지방지는 ‘도쿄신문’, ‘가나가와신문’, ‘오키나와 타임스’ 등 날카로운 아베 비판을 이어가는 신문도 많다. 보수진영이 ‘좌파 TV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하는 TBS의 ‘선데이 모닝’ 등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NHK나 아사히신문 내부에서도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공정한 보도나 드라마·다큐멘터리제작에 맞붙는 기자나 PD가 적지 않다.

각각의 사회의 소통을 지탱하는 미디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다른 국민 간 상호이해의 토대가 될 것이다. 아베 정권의 음흉한 압력을 무릅쓰고 시청률이나 정부의 눈치 보기에 매몰될 것을 거부하면서 참다운 상생과 공정의 가치를 관철하려는 일본의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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