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까마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송이환 수필가

애야, 까마귀 우는 소리 들렴져. 서울 간 네 형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켜.”

이른 새벽, 어머니는 방문을 열더니 돌담위에앉아 있는 까마귀를 훠~이 하며 내 쫓는다.

변시지 화백은 까마귀를 희망의 메신저라 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저 걱정스런 소식만을 접할 뿐이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 난무’. 외롭게 앉아 있는 한 떠꺼머리총각, 그 등 뒤로 조랑말 하나. 천지에 새까만 까마귀 떼가 제주섬을 팽이 치듯 휘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제주의 혼을 그리는 변화백의 작품에는 까마귀가 자주 등장한다.

연초가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떡과 과일을 준비하고 노늘 당을 찾았다. 그곳에는 천년은 족히 됐을법한 늙은 팽나무가 어린 나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신방이 굿을 하다 음식물을 허공으로 던지면 까마귀 떼가 새까맣게 날아들어 쪼아 먹던 광경이 생생하다.

제사가 끝나면서 꼭 하는 일이 있다. 제사음식을 모아 종지에 담아, 지붕위에 뿌리는 일이다. 지붕에 획~뿌리면 어두움에 휩싸인 검은 물체가 잽싸게 음식을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자연 재해가 유난히 많은 절해고도에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까마귀의 영험 까지도 의지하려 했던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는 매년 10월 이후면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해 겨울을 나는데, 위도가 비슷한 우리나라 제주를 비롯해, 일본 규슈 등지에서 대규모 무리가 출몰해 피해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배설물·소음·깃털 등으로 주민들 불편호소가 많다는 것이다. 잡식성인 까마귀는 쓰레기통을 자주 뒤져 주변을 어지럽히는 주범이기도 한데, 그로인해 파생되는 비위생적인 주변 환경으로, 사람들로부터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기사에는 유해동물로 퇴치해야한다는 뜻이 강하게 읽힌다. 자세히 보면 좋은 일도 있다.

중산간도로를 여행하다보면 차에 치여 죽은 짐승의 시체를 청소하는 까마귀를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소동물인 독수리와 함께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워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까마귀는 민가 주변이나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로, 오래전부터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죽음 등을 암시하는 불길함의 상징으로 우리들의 정서에 자리매김해왔다.

제주도에 전승되는 서사무가 차사본풀이를 보면,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강림이 까마귀를 시켜 인간세계에 전달하도록 하였는데, 마을에 이르러 이것을 잃어버리고 까마귀 마음대로 떠들었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었으며, 이때부터 까마귀 울음소리는 죽음의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까마귀가 울면 그 동네에 초상이 난다고 믿고 있으며, 까마귀 울음소리는 불길한 조짐으로 알려져 있다.

도내 일부 골프장에서 까마귀들이 카트에 있는 음식물과 물품을 감쪽같이 털어가는 사건이 발생해 골퍼들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들에게 지퍼가 잠긴 주머니를 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인 것처럼 보였다.

까마귀의 지능은 침팬지와도 비슷해서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살펴본 까마귀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귀한 길조로 여겨져 온 측면도 있다. 나라를 상징하는 고구려의 삼족오하며, ‘견우와 직녀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 주인공의 사랑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동물도 까치와 까마귀이다,

까마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효조(孝鳥)’라는 것이 있다.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어미 까마귀에게 다 자란 자식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나만을 우선시하는 요즘 세상에 우리 인간이 본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맑은 날, 윗세오름에 올랐다. 잠시 쉬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까마귀 떼들이 몰려와 깍깍 울어댄다. 영락없이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다. 울타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갖고 간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한 조각을 던져주었더니, 까마귀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물고 날아간다. 그 평화로운 모습은 60년대 우리들의 허기진 시절 그대로였다.

이제 아침에 까마귀가 운다고 해서 불길하게 여기거나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주사람들과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새. 그 새가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불쾌감을 유발 한다는 이유로 퇴출위기에 놓여있음은 아이러니다.

오늘따라 윗세오름의 까마귀가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