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급제에서 부자·형제 급제까지 다양한 제주인
장원급제에서 부자·형제 급제까지 다양한 제주인
  • 제주일보
  • 승인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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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통계로 보는 제주의 과거 급제자
고태정, 제주 출신 유일 문과 장원 급제자·송상순, 별시 장원급제
양유성·중욱 부자 무과 급제, 김함·김훈 형제 같은 날 나란히 등과
조선시대 제주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의 전경. 홍화각 현판의 글씨는 고득종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고득종의 친필인 홍화각(弘化閣) 편액은 삼성혈 내 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현재 내걸린 현판은 탁본해서 새긴 것이다.<br>
조선시대 제주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의 전경. 홍화각 현판의 글씨는 고득종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고득종의 친필인 홍화각(弘化閣) 편액은 삼성혈 내 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현재 내걸린 현판은 탁본해서 새긴 것이다.

현대는 수치로 말하고 통계로 설득하는 세상이다. 수출입 통계, 무역 수지 통계, 인구 통계, 부동산 통계 등 현실 사회는 수많은 통계 수치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과거 급제자 정보는 급제자 본인을 기준으로 이름, 전력, 본관, 생년, 급제 연도, 급제 등위, 부모, 출신지 등이 일정한 형식으로 정리된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주 출신 문과 급제자는 57, 사마시 급제자는 26, 무과 급제자는 161명이다. 이 수치는 공식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방목과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각 문중이 보관하고 있는 족보의 기록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갑자증광문무과방목(甲子增廣文武科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의 1624년 제주인 무과급제 기록.<br>
‘갑자증광문무과방목(甲子增廣文武科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의 1624년 제주인 무과급제 기록.

제주지역에서 첫 문과 급제자로 기록되는 인물은 고득종(高得宗)이다. 그는 1414(태종 14) 알성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했다. 그래서 제주의 역사적 인물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득종은 13년 후인 1427(세종 9)에 치러진 중시 문과에서 을과(乙科)로 급제해 제주 출신 중 거의 유일하게 문과에 두 번 급제하는 이력을 남겼다

고득종의 자는 자부(子傅)로 급제 후에 호조참의를 지냈고, 중추원부사일 때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외에도 동지중추원사, 한성부윤 등을 지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홍화각기(弘化閣記) 등 몇 편의 글이 전할 정도로 문장도 뛰어났다. 참고로 홍화각은 제주목 관아에 있는 건물로 1435년 안무사 최해산(崔海山)이 창건했는데, 홍화각기는 그 건립 내역을 기록한 글이다

고득종은 고태정(高台鼎), 고태필(高台弼), 고태익(高台翼) 3형제를 아들로 두었는데 모두 문과에 급제해 제주고씨의 문명을 떨쳤다. 이들이 다른 급제자들과 다른 점은 제주에서 과거를 치른 것이 아니라 한양에 올라가서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는 점이다. 제주고씨는 이들을 포함, 11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해 제주 최고의 명문이 되었다.

제주민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뚫고 문과에 장원한 인물이 있다. 위에서 말한 고태정은 1459(세조 5) 식년 문과에서 33명의 급제자 중 장원을 했다. 제주 출신 중 유일한 문과 장원급제자다. 이 외에도 여산송씨 송상순(宋祥淳)1863년 제주 지역민을 위해 치른 별시에서 장원을 했다.

제주도는 고득종을 시작으로 1400년대에 4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지만 1600년대까지 근 200년간 급제자가 없었다. 육지에서 격리된 섬이라는 자연적 조건이 제주인의 중앙 진출을 막는 큰 요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지역 주민을 위해 제주에서 실시하는 별시가 시행되기 시작한 1600년대 이후 급제자가 많이 늘었다.

한편 생원 진사를 선발하는 사마시 급제자는 제주 전체를 통틀어 30명이 넘지 않는다. 이 중 6명이 김해김씨이다. 그 첫 문을 연 사람은 1828년 식년시에서 생원 3등으로 급제한 김석린(金錫麟)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김양수(金亮洙)1874년에 급제해 진사가 됐다.  제주 김해김씨는 무과에서 특히 두각을 보이는데 19명이라는 급제자를 배출했다.

제주민들은 한 두 명씨 간헐적으로 급제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이가 한 번에 급제한 사례도 3건 있다.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로 국왕이 된 인조의 즉위를 경축하기 위해 1624년에 증광 무과가 시행됐는데, 진주강씨 강취황(姜取璜) 16명이 급제했다. 그리고 1765년에는 제주고씨 고세보(高世寶) 43, 1783년에는 남평문씨 문인규(文仁奎) 30명이 대거 급제했다

다른 기록을 보면 태인송씨 송정필(宋廷弼)과 이천서씨 서문준(徐文俊)은 과거에 두 번 급제하는 이력을 남겼다. 두 사람은 1723년 별시 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또한 2년 후인 1725(영조 1)에 영조 임금의 장자가 효장세자로 책봉됐고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한 겹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정시 무과를 실시했는데 여기에서 다시 급제했다.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든 과거에 두 번 급제한 놀라운 사람들이다

양유성의 무과 급제 기록.<br>
양유성의 무과 급제 기록.

한편 아버지와 아들이 무과에 급제한 사례도 있다. 전주전씨 전남(田男), 전익방(田益邦) 부자와 제주양씨 양유성(梁有成), 양중욱(梁重郁) 부자 등이다

같은 날 형제가 나란히 무과에 급제한 사례도 있다. 귀일(貴日)김씨 김형무(金亨武)의 아들 김함(金諴), 김훈(金訓) 형제가 1624년 무과에, 고부이씨 이헌(李憲)의 아들 이선태(李善泰), 이영태(李榮泰) 형제가 1765년 무과에, 나주정씨 정노흥(丁老興)의 아들 정덕구(丁德九), 정덕칠(丁德七) 형제가 1783년 무과에서 나란히 급제했다

이외에도 급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형제가 무과에 급제한 사례로는 화순오씨 오영관(吳榮冠)의 아들 오성도(吳聖道)와 오성준(吳聖準) 형제, 성주이씨 이정무(李廷茂)의 아들 이광빈(李光彬), 이광수(李光秀) 형제가 있다.

양중욱의 무과 급제 기록.<br>
양중욱의 무과 급제 기록.

제주민의 과거 급제 기록과 관련해 가문의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희당(李禧戇)은 제주 출신을 배려하기 위해 시행된 1879년 정시 문과에 제주 출신으로 속여서 급제했다가 발각됐다. 그 벌로 합격이 취소되고 제주목의 군졸로 편입됐다. 그러나 다음 해인 1880년 왕세자가 수두에서 회복된 것을 경축하기 위해 시행된 문과에서 급제자의 자격이 회복됐다

이런 이력 때문에 국조문과방목에는 그의 출신지가 아직도 제주로 기록돼 있고, 또 다른 방목에는 중화(中和)’로 돼 있다.

사실 제주 출신 과거 급제자는 전국을 통합한 인원에 비하면 많은 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라는 이름을 입혀서 약간만 해석을 달리 하면 읽는 이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필자 양창진(梁彰珍)은…

▲1967년생

▲제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석사. 박사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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