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좋은 집안·깨끗한 몸가짐으로 청렴함 칭송받아
(124) 좋은 집안·깨끗한 몸가짐으로 청렴함 칭송받아
  • 제주일보
  • 승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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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교포 시인 김이옥, 이여도 등 고향 제주를 주제로 시 지어
 여성운동가 김이환, 김시학의 딸…제주부녀동맹 위원장 선출
 조선 후기 제주 향관 김익강, 친·외·처가 세 권당 모두 향관돼
 조선 중기 무신 김익견, 효종 때 정의현감 도임…병자호란 참여
 제주판관 김익겸, 성종때 도임…제주·정의·대정서 선비 교육
 조선 후기 문신 김익구, 1675년 문과 급제·숙종 때 정의현감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향사당은 봄과 가을 두 차례 고을 사람들이 모여 활을 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이였으며 민심을 살피던 자치기관 역할도 수행했다. 조선 후기에 자치기관인 향청의 기능을 수행, 이곳에서 좌수와 향관 등이 근무했다.

김이옥金二玉1918(일제강점기)~1945, 재일교포 시인

제주-성안출신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하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일본어日本語로 시를 발표했다

소년 시절부터 일본을 왕래했고 주로 일본에서 문학 수업修業을 했다. 일본에서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작품을 써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옥의 누이동생인 김소옥에 의하면 김이옥 시와 소설을 많이 써두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남겨진 작품은 시47편이다

시 한두 편 정도만 남긴 다른 시인들에 비하면 훨씬 많은 분량이다. 그래서 그의 시 경향을 논의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1946129일에 발간한 신생新生21호가 신생사 편집부의 이름으로 향토시인 고김이옥군을 추도하여라고 추도문을 싣고 유작遺作 2편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어日本語 시의 일부는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19958월에 발간한 탐라문화총서 13 ‘제주문학-1900~1949’에 수록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여도’, ‘해녀1’, ‘해녀2’, ‘슬픈 해녀인가요’, ‘방고애부訪故哀賦와 같이 제명題名으로 봐서 고향 제주를 제재題材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시는 나의 노스탈지어여이다

보리씨 뿌리고 조밥을 먹고/ 토란 방귀뀌는 우둔한 섬/ 빈 바람에 돌멩이 구르는 들판/ 풀마저 뻗지 않는 가난한 땅/ 샘을 가지지 않은 말라붙은 강은/ 향수의 빈병인가 /개똥 천지인 하얀 길.

김이옥의 시:시제목=이여도, 이여도는/ 내 고향의 장단 소리언만/ 그 근원을 보면/슬픈 인생의 고난이 있다/ 그러나 오늘/ 그것을 적으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여도의/ 분위기를 전하고 싶을 뿐/ 이여도, 이여도가/ 어딘지는 모르나/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여도를 노래하며/ 쌀을 찧고 보리를 때리며 이여도에 사노라/ 이여도, 이여도가/ 어딘지는 모르나/ 달밤 결혼 앞둔 처녀의 마음도/ 이여도에서 어머니가 되고/ 아직 아비를 못 본 채 아비 기다리는 아이에게/ 이여도 이여도를 전하며 우노라

제주 최초의 영화극장인 옛 현대극장 건물 전경. 1943년 일본인이 조일구락부를 설립한 후 1978년 현대극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제주부녀동맹이 출범됐다.

김이환金二煥()1909(융희3)~?(분단시대), 여성운동가. 일명 김인환金仁煥. 본관 김해. 조천리<梨洞>에서 태어났다

항일운동가 김시학金時學의 딸이다. 제주시 삼양동 태생 고창무高菖武와 결혼했다

1947년 제주금융조합 이사理事 고창무가 제주시 민주주의민족전선 임시 의장단으로 피선됐다.

이어 같은해 112일 조선민주청년동맹이 결성되자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1947125일 각 읍면 대의원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읍내 조일朝日극장에서 합법적으로 제주부녀동맹이 출범, 위원장에 김이환, 부위원장에 고인선高仁善과 강어영康御榮, 집행위원에 고순덕高順德 80여 명이 선출됐다

김이환은 개화사에서 조선의 해방은 8할 이상을 점하고 있는 무산대중과 1500만 여성의 해방 없이는 독립을 기할 수 없다. 이를 위하여 투쟁하여야 된다.”고 밝혔다

김이환은 또 제주 3·1 사건 당시 3·1절 기념식에서 사회를 맡았다. 이는 그 동안 계몽 위주의 활동을 넘어서 계급투쟁과 정치 지향적인 선언을 한 셈이다

제주읍부녀회도 제주읍부녀동맹으로 개편, 위원장에 고인식高仁植, 부위원장에 양청열梁淸烈, 김금순金錦順, 집행위원에 강소희姜素姬 30명이 선출됐다

김익강金益剛생몰년 미상, 순조 당시 제주 향관鄕官, 본관 김해. 딸이 양제해의 며느리였다

김익강의 선조는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을 따라 들어와 섬에 정착했다

주법州法에 향관이란 집안이 좋고 몸가짐이 깨끗해야 한다

진가陳家·외가·처가 세 권당이 모두 관이 되고, 명망가가 된 연후에 마침내 향관이 되니 나라의 홍문관弘文館에 비견된다.

김익강은 5회에 걸쳐 향감鄕監을 지냈고, 1회 향수鄕首를 거치니, 제주백성들은 가장 청렴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김익견金益堅생몰년 미상, 무신. 현종 때의 정의현감. 본관 청풍

1624(인조2) 이괄李适의 난에 임금을 공주로 호종扈從했고, 무과에 급제한 뒤에 1636(인조14) 병자호란 때에 남한산성에 호종해 여러 번 나아가 전투에 참여, 10여 곳에 상처를 입었다

1659(효종10) 6, 안여홍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도임하고 1661(현종2) 11월에 떠났다

김익겸金益謙생몰년 미상, 무신. 제주판관. 생원시에 합격했다.

14939월 제주는 서적이 거의 없었다. 이에 사서삼경을 판관 김익겸金益謙이 가는데 보내고, 학문을 진흥시키도록 했다.

1493(성종 24) 10, 김세균金世鈞의 후임으로 도임하고 14967월에 군자주부軍資主簿로 제수됐다

임금이 제주목사 이종윤李從允에게 말하기를 본주와 정의·대정 등 삼읍은 서책 얻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신임 판관 김익겸은 비록 출신이 무과라 하나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니 제생을 훈회訓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서四書·모시毛詩·소학小學을 각각 3권씩 보내니 김익겸과 삼읍의 교수·훈도와 마음을 합하여 권장하고 인재를 양육하도록 하라고 했다

김익구金益九1646(인조24)~1702(숙종28), 문신. 정의현감. 평양에서 태어났다. 자 사겸士謙, 본관 화순. 김두문金斗文의 아들이다

1675(숙종1) 문과 식년시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1700(숙종 26) 2, 이한장李漢章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도임하고 17027, 전출되어 포구에 내리자 5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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