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절의 행복
가난한 시절의 행복
  • 제주신보
  • 승인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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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임 수필가

유년시절, 달 속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음력 정월 보름밤이면 달집 가에 원을 그리며 밤새도록 불 깡통을 돌리다보면 눈초롱만 번뜩이는 도깨비 같은 불꽃은 유년의 꿈을 싣고 밤하늘로 날아갔다.

전라도 내 고향에서는 정월 보름을 대명절이라고 했다. 정월은 한해가 시작하는 일 년의 운세를 점치는 달로써 보름밤이면, 어머니는 장독 위에 오곡밥 시루와 정화수를 올리고 가족 건강, 한해의 농사와 풍요를 기원하셨다. 정월 보름 아침 가족들 밥상에 올랐던 갖가지 나물과 오곡밥 한 덩이 맛을 떠올리면 배고픈 시절, 그 눈물겨운 유년의 기억들이 하나 둘 줄을 선다. 요즘에는 오곡밥이 대수롭지 않지만, 그 시절은 별미였다.

동이 트면 집집마다 세시풍습인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농악패가 홍탁한 사발에 신명나게 흥을 돋운다. 우리는 삽사리처럼 농악패를 따라다니며 밤, 대추를 받아먹었다. 보름은 여느 날보다 유난히 걸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누더기를 걸친 행색이 초라한 여인이 아기를 업고 우리집 사립문을 기웃거렸다. 어머니는 오곡밥과 나물 가지 몇 가지를 바구니에 담아주었다. 그 순간 집게손으로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밥을 먹어치우는 아주머니, 배고파 보채는 아기를 어르며 다시 옆집 문간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짠한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 시절 60년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인들이 다녀갔다. 우리집은 조부모님의 가업인 농사로 생계를 연명하며 대가족이 근검하게 살았다. 식사 때 밥 한 톨만 흘려도 소똥이 빵으로 보일 때까지 굶어보라고 벌을 세웠던 어머니는 자녀에게 식량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셨다. 군것질거리는 떫은 똘감과, 신맛에 저절로 침샘이 솟는 탱자, 메뚜기구이, , 고구마와 오빠의 휴가 선물인 군대 건빵 등. 이것들이 내 유년의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동전 한 푼이 귀한 시절, 대부분 끼니만 거르지 않는다면 잘사는 집이라고 여기던 오, 육십 년대. 그 시절 주인공인 우리들은 십여 리나 되는 소학교를 책보자기 등에 메고 논밭 사이를 비껴가면 청초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사뿐히 내려앉을 듯한 드넓은 벌판을 누비고 다녔다. 전봇줄 위에 얼룩무늬 비비새 한 마리 졸린 눈을 비비는 평화로운 산골의 향수가 서린 곳, 바로 그곳이 사계절이 피고 지는 그리운 내 고향이었다. 참새 떼처럼 밭이랑에 앉아 메뚜기랑 풋보리를 짚불에 검게 그을려 입안 가득 오물거리면 그 고소함이 꿀맛이던 유년시절, 보름달처럼 토실토실한 내 동무들 다 어디서 살고 있는지 지난 시절이 아프도록 그리워진다.

시대의 변천사는 구멍가게가 마트로 바뀌고 각종 과자 빵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는 요즘, 맛 자랑하는 음식점마다 문전성시를 이루며 대부분 잘 먹고 잘살자는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세상이고 보니 가난했지만 소박한 지난 세월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떡 한 조각이라도 이웃들과 나누던 인정과 음식물 찌꺼기는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었던 지난 세월. 이제는 집집마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넘쳐나고 좋은 음식마저도 배가 불다며 손사래 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초등시절 도시락도 없이 강냉이 죽 한 공기로 점심을 때우며 얼굴에 버짐이 곰팡이처럼 번져있던 고아원생들의 얼굴이 활동사진처럼 스쳐간다.

지난날 명절 때나 맛볼 수 있었던 육식마저도 지천이요, 음식물 쓰레기통에 명절 음식이 통째로 버려져 있는 것을 볼 때면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진다. 이웃과 담이 높아질수록 초가삼간,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올해 경자년은 보름달에게 편지를 띄어본다. 이 세상 모든 인연들에게 바라는 소망은 다시금 초가삼간 그 시절처럼 따스한 인정을 베풀고 나누며 살고 싶다. 미래에 나의 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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