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을 결정짓는 관계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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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싸웠다. 191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참호 속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나라는 달랐지만 같은 기독교 문화를 가졌기에 적군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따라 불렀다. 병사들이 용기를 내어 엄폐물도 없이 참호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총을 안 쏘았다. 병사들이 비무장 상태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급기야 크리스마스 친선 축구까지 했다. 왜 크리스마스 휴전이 일어났을까? 수뇌부와 멀리 떨어져 싸우는 최전선 병사들은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몰랐다. 칼과 창으로 싸우는 백병전은 한 번의 싸움으로 승부가 갈렸지만 참호전은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몰라 장기간 대치하게 만들었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모두 상대방이 무방비 상태인 식사시간과 세면시간에는 서로 공격하지 않았다. 내가 공격하면 적도 나중에 공격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잘못 대포를 쏘면 적을 향해 형편없는 대포 때문이라며 미안하다 말하고 다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까지 했다. 상대방과 앞으로도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전쟁 중인 적과도 협력을 이끌어낸다.

장래에도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으면 보다 협력적인 관계로 바뀐다.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경우에 잘 나타난다. 흡혈박쥐는 저녁에 채혈을 위해 사냥에 나서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2년생 이하의 흡혈박쥐 세 마리 중 하나는 사냥에 실패한다. 사냥에 성공한 흡혈박쥐는 자신이 먹었던 것을 사냥에 실패한 박쥐에게 내뱉는다. 먹이를 받은 박쥐는 지난번에 자신에게 먹이를 뱉었던 그 박쥐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리 대사활동에 필요한 유전자가 없어 번식을 위해 숙주세포에 침입한다. 바이러스 입장에선 독성이 너무 강해도 안 좋고, 너무 약해도 안 좋다. 바이러스의 독성이 너무 강하면 사람이 죽게 되어 바이러스도 같이 죽고, 너무 약하면 사람의 면역세포에 파괴당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이기적으로 번식 속도를 높이면 숙주인 사람이 죽게 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번식 속도를 억제한다. 병약한 사람은 관계를 기대하지 못해 바이러스는 번식 속도를 높여 사람과 바이러스 모두 죽게되는 파괴적 게임을 한다.

2020년 2월 2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80%는 가벼운 폐렴 증상을 보이거나 증상이 없었다. 소아청소년은 바이러스에 감염됐더라도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보였다. 19세 미만 확진자는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호흡기 바이러스의 감염과 유사하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으로 중증 폐렴 발생이 높은 경우는 65세 이상의 노인 환자, 당뇨병 환자, 심장 질환 등 연로하고 기존 병력이 있는 환자로 추정된다. 건강한 청년보다 병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위협적인 것은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 혼자 살지 못한다. 바이러스도 생존을 위해선 사람을 살려야 한다.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손을 전파하기 위해 사람에 대한 병독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유전자를 바꾸게 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치사율이 초기에는 높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작아지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어 면역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면역력을 키우려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술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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