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절경·천혜의 입지조건으로 사랑받는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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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천지연 생수궤와 돌하르방
바람 영향 적고 먹거리 풍부해
배 접안·사람 살기 좋은 조건
마을 지키는 수호신, 돌하르방
제주도 민속자료 2호 지정·보호
서귀포시 서귀동 795번지에 위치한 천지연 생수궤. 천지연 하천의 하구에 형성돼 있다.

천지연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번 질토래비 여정에서는 천지연과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들인 돌하르방 군락들을 살펴보고, 인근에 설치돼 이곳을 찾은 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채워주는 시비(詩碑)를 살펴본다.

천지연 생수궤

천지연은 바다가 육지의 내부로 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바다의 작은 만이 끝나는 지점에는 기암절벽이 형성됐다. 내해가 발달해 바람의 영향을 막아줘 배가 접안하기 좋은 입지조건이다

또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고 바다가 제공하는 먹거리도 풍부해 사람이 살기에도 좋다. 게다가 자그마한 천연동굴이 있고 주변에는 음용할 용천수가 있다. 서귀포시 서귀동 795번지인 이 지역에는 지금도 용천수가 흐르고 있다. 이 용천수의 이름이 생수궤이다

천지연 주변의 옛 지도.

다음은 이곳 안내판의 내용이다

천지연 생수궤는 천지연 하천의 하구에 형성되어 있는 너비 270, 높이 600의 바위 그늘 집으로서 제주어濟州語로는 라고 한다. 이 유적은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과 함께 졸업답사를 위해 제주도에서 지표조사를 하던 중 당시 이곳에서 전형적인 긁개 1, 돌날 3, 박편 2, 작은 박편에 만들어진 홈날석기 1개 등 모두 7점의 유물을 찾아내어 발표함으로서 공개되었다. 이 유물은 기원전 25000년 전, 제주도가 한반도와 연결되었던 연륙시기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서귀포시의 구석기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커 서귀포시지정 향토유산으로 (2005316) 지정했다.’

서귀포역사문화걷는길에서 만나는 시비들과 화풍청천(和風晴天)

천지연 가는 길과 자구리 해안가를 비롯한 솔동산 문화의 거리 등에는 많은 시비들이 설치돼 있다. 시비가 있는 길은 작가의 산책길이라 명명해 읽어줄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서귀포에 관련한 시 두 편과 소남머리에 세워진 소암 선생의 화풍청천(和風晴天)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소남머리에 세워진 소암 현중화 선생 안내판.

김광협 시인과 시 유자꽃 피는 마을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사이로/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 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더이다./ 뒷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 보오보오 연락선이 한 소절 울 때마다 떨어지는 유자꽃/ 유자꽃 꽃잎이 울고만 싶더이다./ 유자꽃 꽃잎이 섧기만 하더이다

천지연 입구 광장 북동쪽 한편에 1996년 건립된 위의 시비의 주인공인 김광협 시인(1939~1993)은 서귀포시 호근리 출신으로 서귀중과 서귀산과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 국어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월간 신세계빙하를 위한 시로 등단하고 1965년 동아일보에 입사, 활발한 창작활동을 병행했다. 1974년 현대문학상을, 1981년 문예진흥원이 수여하는 대한민국 문학상을 받았다. 특히 제주어로만 쓰는 시를 시도해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을 발표하면서 제주어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강문신 시인의 시 함박눈 태왁

신묘년 새아침을 서귀포가 끝을 낸다/ 적설량 첫발자국 새연교 넘어갈 때/ 함박눈 바다 한가운데 태왁 하나 떠 있었네/ 이런 날 이 날씨에 어쩌자고 물에 드셨나/ 아들놈 등록금을 못 채우신 조바심인가/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물에도 풀리지 않는/ 새해맞이 며칠간은 푹 쉬려 했었는데/ 그 생각 그마저도 참으로 죄스러운/ 먼 세월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어멍

한기팔 시인의 시가 새겨진 바위.

한기팔 시인의 시 西歸浦에 와서는’ 

西歸浦에 와서는/ 누구나 한 번은 울어버린다/ 푸른 바다가 서러워서 울고/ 하늘이 푸르러서 울어버린다/ 촉새야 촉새야/ 소남머리 거벵이 바위틈에 앉아 우는/ 외짝눈이 촉새야/ 바람이 불면 어찌하리요/ 노을이 지면 어찌하리요/ 물결은 달려오다 무너지며/ 섬 하나를 밀어 올린다/ 하얀 근심이 이는/ 날 저문 바다/ 먼 파도 바라보며 울고/ 사랑이 그리움 만큼/ 水平線 바라보며/ 울어버린다

천지연 입구에 있는 돌하르방 안내판.

천지연 입구를 지키는 돌하르방

천지연에는 돌하르방 군락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리고 돌하르방에 대한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 안내판에는 돌하르방이 지방문화재 민속자료 2호라는 안내가 돼 있다

하지만 돌하르방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는 생략됐다. 다만 이곳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하나도 없다.

다음은 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의 돌하르방에 대한 설명이다

다만 안내판은 돌하르방의 제작시기와 방법 등의 안내가 없거나 잘못돼 있다. 관광지 안내판의 내용은 관광객들에게 사실로 인식되는 만큼, 전문가를 통해 안내판 내용의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방언으로 돌하르방이라는 뜻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서 수호신을 해왔다. 한라산 일대에 흔한 용암석으로 만든 돌하르방은 용암석 특유의 다공질(多孔質)의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쏘아보는 듯한 야무진 눈망울로 마을에 침입하는 잡귀나 잡인을 쫓아내었다. 벙거지를 꾹 눌러쓴 불룩한 뺨 옆에는 길쭉한 귀가 달려 있고 두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험상한 얼굴에 미소마저 담뿍 담고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퍽 익살스런 인상을 주기도 한다

돌하르방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달라 제주시내에서는 우석목(偶石木), 보성리(保城里:옛 대정)에서는 무석목, 성읍(城邑)에서는 백하르방 이라고도 일컬었다. 또한 한학자 간에는 옹중, 옹중석(翁仲石), 돌부처, 미륵이라고도 불렸다. 돌하르방의 기원을 몽골풍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제주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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