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박수량의 백비(白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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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민원홍보담당관

감사원 선정 조선시대 3대 청백리는 박수량, 황희, 맹사성이다. 그중 황희와 맹사성은 많은 분들이 알지만 박수량은 생소할 수 있다. 이분 또한 조선시대 청빈한 삶과 근검 등의 덕목을 갖춘 청백리다.

지난해 2월 지방자치 인재개발원에서 6주간의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청백리의 고장인 전남 장성군에 있는 아곡 박수량의 백비, 호남 제일의 사액서원인 필암서원을 다녀왔다.

비문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비석을 ‘백비’라고 하는데, 박기량의 비석은 다른 비석과 달리 아무 내용이 없는 말로만 듣던 백비였다.

박수량은 참판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상을 치르던 시절 호의호식을 한다고 허위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중앙정부는 암행어사를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했는데, 암행어사가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박수량의 모습을 재확인하고 중앙정부에 보고하면서 그의 청빈한 생활을 입증하게 된다. 또한 박수량은 “시호도 받지 말고, 묘 앞에는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백비는 명종임금의 청백리 아곡 박수량에게 하사한 비석으로,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라고 했다고 한다.

명종이 인정한 박수량, 그의 묘지를 방문하면서 청렴한 사회를 일깨워주는 시간이 됐다. 박수량의 청렴은 요즘 공직자들에게 찾기 어려운 청빈한 삶이며, 이러한 청렴한 자세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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