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꿈
봄꿈
  • 제주신보
  • 승인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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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심 수필가

목련이 졌다, 목련이 졌다.

밀어(密語)처럼 봄밤을 속삭이던 목련이 지고 말았다.

낱낱이 떨어진 꽃 이파리,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날아오른다.

날씨가 좋다. 훈훈한 바람에 계절의 변화가 가득 묻어난다. 한 시간도 채 못 걸었는데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는 무리에서 떨어질 새라 종종 대며 걷다보면, 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 울창한 소나무들, 간간히 섞여 자란 동백나무들, 이제 겨우 눈뜨고 바라보는 상산나무, 쥐똥나무의 새순들에게 눈을 빼앗겨 있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의 선창으로 숲이 들썩인다.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 ‘경자들의 합창이 통 통 통 튀어 오른다.

올해 들어 예정 없이 여고 동창 친구들이 자주 모인다. 주말 마다 숲이나 오름을 한 두 시간 걷고, 볕 좋은 곳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름대장이 마련한 김밥과 제가끔 갖고 간 떡, 삶은 달걀, 군고구마, 찐 감자 등 등, 그 외 사과, , 방울토마토 까지 다 펼쳐 놓으면 잘 차린 한 상이 된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 풀냄새, 흙냄새... 숨 깊이 들어오는 맑은 공기. 태양 빛에 물 오른 얼굴 마다엔 오름 초입에 활짝 핀 목련꽃 같다.

~. 나만 잘 살면 된다게. 아이들은 알앙 잘 살아.”

맞아, 맞아. 이젠 우릴 잘 챙기고 살아야 할 때라.”

아프면 나만 서러워, 아무도 안 알아줘, 아프면 여기도 못 와 하는 소리에 맞장구치며 한바탕 웃는다. 육십갑자(六十甲子) 한 바퀴를 다 살고 제 자리로 돌아 온 나이. 이순(耳順)을 넘긴, 이라 하면 더 지긋해 보이고, 그렇다고 환갑(還甲)이라 하긴 더욱 낯선, 어느 날 문득 마주친 생경함에 어쩔 줄 몰라 가슴이 텅 빈 나이. 그 느낌을 쉽게 감당 할 수 없어 모두들 길을 나서는지 모른다.

숨 가쁘게 달려오다 ’, 턱에 걸려 멈춰 선다. 늘 턱에 걸려 넘어지고, 아파하고, 다시 일어나 훌훌 털고, 그러기를 수차례. 아침을 보지 않으려 커튼을 내리고, 그러다 겨우 손바닥만 한 마음 추슬러 볕에 말리면, 생기가 돌고. 육십 여년을 살다보면 어떠한 삶에든 나름대로의 이력이 생기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나름대로 삶의 이치를 터득하고 그 무용담 같은 여정을 한 자락씩 읊는 걸 보면. 이제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이 문턱을 넘어서며 숨고르기를 해본다. 남은 날들을 온전하게 살아내기 위해, 그리고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또, 잘 죽기 위해서.

얼마 전부터 하나 씩 정리를 한다. 마음의 정리, 사물의 정리, 사람과의 정리 등, 내가 살아온 삶의 전반에 걸쳐 정리의 필요성을 절감해서다. 집을 나설 때면 행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 가까운 친구도 그리한다고 한다. 지금의 나이는 그렇게 또 다른 것을 준비해야 할 나이인 듯하다. 70, 80, 90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60대인 지금의 시기를 잘 보내야 한다. 그동안 터득한 경험과 지혜와 통찰로 더욱 성숙한 삶을 가꾸며 또 다른 성장을 꿈꿀 수 있다면 노년의 삶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듦은 엄연한 우주의 섭리, 거슬릴 수 없는 생리 현상. 노목이 의연히 서서 숲을 지키듯 우리 또한 그렇게 함께 우주의 운행에 동참할 수 있으리.

꿈을 꾼 듯하다. 나른한 봄볕에 잠시 졸음에 빠졌나 보다. 꿈인지 생시인지 환갑의 여인네들이 한바탕 깔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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