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속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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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응이 구미의 유력 외신이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한국인은 민주주의가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보여 주었다’(독일 Spiegel 3월 12일 자), ‘개방성과 투명성에 따른 국민의 신뢰에 근거한 지극히 높은 시민의식과 자발적인 협력’(Washington Post 3월 17일 자) 등의 지적에서 보듯이 한국이 과시한 높은 수준의 민주사회로서의 면모이다.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한국 사회는 확실히 촛불혁명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의 진전에는 과거사 청산의 심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제주4·3에 관해서도 그동안에 새로운 진전이 있었다. 제주도민의 오랜 소원이었던 4·3 희생자 배·보상 등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4·3 70주년 위령제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20대 국회의 난장판으로 4·3특별법 개정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재정지출이 소요되는 배·보상에는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보였다고도 한다. 4·15총선을 앞두고 제주도에서 출마한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4·3특별법 개정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21대 국회에서는 꼭 실현될 것을 기원한다.

한편 4·3특별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와 관련해서 솔직히 위화감을 느낄 부분이 없지 않다. 그동안 4·3특별법개정은 무엇보다도 배·보상 문제에 치중해서 추진돼 왔는데 배·보상의 실현을 마치 ‘4·3의 완전 해결’과 동일시하는 기세도 감지되는 것이다.

4·3운동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배·보상의 문제 이외에도 여전히 해결돼야 할 과제들이 많다. 그중 미국의 책임 문제나 4·3의 역사 정립과 관련된 ‘정명’ 문제는 비교적 활발하게 논의돼 왔고 불법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의 명예회복이나 보상 문제도 최근 들어 그 나름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4·3특별법의 사각지대로서 ‘그늘 속의 4·3’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중 하나는 희생자 인정에 관한 문제다. 이미 지난해 4월에 올린 ‘제주시론’(2019년 4월 3일 자)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동안 4·3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4·3의 무장봉기를 주도한 항쟁 지도부를 희생자 인정에서 배제해 왔다. 이 문제는 ‘남’과 ‘북’이 같은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제일 동포사회에서 더더욱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4·3 당시 여성들의 희생에 관해서도 또 하나의 ‘그늘 속의 4·3’으로 간직돼야 할 것이다. 4·3특별법에서는 ‘여성의 성폭력 등은 피해규정에서 제외되어’ 있고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성폭력이나 강제 결혼 등 성과 밀접히 관련된 희생들은 특별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김은실 ‘4·3과 역사’ 제18호).

희생자 배제의 문제든 여성의 희생 문제든 단지 제주4·3의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넘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맥락에서 인식돼야 할 것이다.

즉 이는 탈분단이 지향되고, 뿌리 깊은 남성 제일주의 비판이 넘치게 된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과 결부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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