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야 할 최고
지워야 할 최고
  • 제주일보
  • 승인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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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손수레가 힘겹게 동산을 오르는 모습을 종종 본다. 종이상자를 가득 싣고 끌고 가는 할아버지.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유모차에 종이 상자를 싣고 고물상으로 향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보는 게 현실이다.

용돈 벌이로 하겠지만 힘겨워 보여 안쓰럽다. 하루에 몇 천 원 벌이지만 그도 할 일이 있어 좋단다. 그들은 애국자다. 쓰레기를 재활용 자원으로 바꾸는 데 한몫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있지 않은가. 덜 필요한 곳에 주는 보조금을 줄이고 이들에게 혜택이 더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리 집 오른쪽엔 농자재, 카센터가 자리했다. 왼쪽엔 어린이집, 펜션이 들어서 있다. 10여 년 전 허용되는 건축 고도 제한으로 모두 3층 건물이 지어졌다. 활발히 돌아가는 사업장들이다. 수시로 물건이 들고 난다. 물건을 풀고 나면 적잖은 종이상자들이 입구에 쌓인다.

우리 아이들이 농자재를 인수하고 운영을 시작했다. 입구엔 늘 종이 상자가 수북하다. 예전 운영자부터 할아버지 한 분이 수년째 트럭을 몰고 와 싣고 가는 걸 봤다. 적잖은 양을 독점하는 편이니, 손수레나 유모차와 비교하면 사업가처럼 보인다. 그것에도 빈부 차를 보는 것 같아 웃곤 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각국 확진자 수치를 거론하며 최고에서 멀어지려고 난리다. 이 달 들어 그 할아버지가 다녀가질 않는다. 코로나19로 나다니기가 껄끄러워서 그런가? 어디 몸이 편찮으셨나? 종이상자가 켜켜이 쌍이는 것처럼 궁금증도 더해 갔다.

연락처를 모르니 알아볼 수도 없고, 넘치는 종이 상자를 치워야 하므로 예전에 명함을 받아둔 고물을 수집하는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를 통해 이유를 알았다. 요즘은 정부에서 재활용 종이상자를 받지 않아서 수집하지 않는단다.

자전거를 타고 클린하우스를 돌아보니 가는 곳마다 종이상자가 수북하다. 예전에는 수집하던 분들이 다투어 가져가던 것들이다.

정책을 나무라고 싶다. 종이상자를 수집해 푼돈이나마 장만하는 사람들은 안중에 없는가. 그러잖아도 선진국보다 턱없이 낮은 재활용 쓰레기다. 이래선 안된다. 정쟁과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만 보이는 건지 아쉽기만 하다.

재활용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하지만 독일이나 일본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도청환경과 공무원과 쓰레기 매립장 사후관리, 재활용 실태 조사를 많이 다녔었다. 현장을 다니며 피부로 느끼는 재활용 비율은 20% 내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기를 오염시키며 태워지고, 토양을 오염시키며 넓은 땅에 매립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자체마다 후보 매립지 선정에 애를 먹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은가.

오랜 세월 쓰레기 문제를 조사해 왔고, 교육하는 입장에서 판단해 본다. 우리나라는 특별한 음식문화와 풍족해 보여야 만족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와 과대포장, 온라인 상업이 확대되면서 택배로 받는 물건도 많아졌다. 내용물을 꺼내고 나면 수북이 쓰레기가 쌓인다.

공개된 재활용 수치는 믿을 수 없음으로 무시하고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보인다. 고철 값이 자꾸만 떨어지고 이젠 종이상자까지 홀대를 받고 있으니 정책이 앞장서야 할 것 아닌가.

최고란 생각이 이런 부분엔 속히 지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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