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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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알아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농아(聾啞)라 한다. 말소리명료도 80데시벨 이상인데, 이보다 더 심한 90데시벨 고도의 난청은 농(聾)이라 부른다 한다. 두 살 아이도 듣고 하는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한다니, 그 무슨 천형(天刑)인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피나는 노력으로 구화(口話)를 익혀 극복하는 사례도 있다 한다. 어머니가 배에 쌀가마니를 얹어 훈련시킨 얘기도 전한다. 중증일 때는 입모양을 보고 호흡법·발성법을 촉각을 통해 인지시키는 언어치료과정으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농아와의 소통은 힘들고 풀어내는 데 개인차가 클 수밖에 없다.

살고 있는 세상과 소통하는 농인들의 일차언어가 수화(手話) 또는 수어(手語)다. 농아에게 이쪽의 정보를 전해 주는 다리 구실을 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그러니까 손의 움직임과 비수지(非手指)신호인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시각언어다. 농인과 그의 가족, 수화통역사가 사용한다. 수화는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그 위치나 이동, 표정과 입술의 움직임을 종합해 구사되는 언어체계를 가진다. 일반 언어와 전혀 다른 딴 세상의 언어가 아니다. 사용자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음성언어와 한가지로 ‘자연언어’다.

수화의 가장 작은 단위에는 언어의 음운과 같은 수화소(手話素)가 있다. 손의 모양·손의 위치·손의 움직임·손바닥의 방향 그리고 덧붙는 게 손의 신호가 아닌 얼굴 표정이다. 결국 비언어 의사소통인 몸짓언어(Body language)·다. 그렇다고 야구에서 코치가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 군대에서 어떤 상황을 알리는 수신호인 사인과는 아주 다르다. 농아와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 대상부터 틀리다.

‘소리’는 언어를 정의하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매개체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으며, 수화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매개하는 소통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언제부터인가 TV뉴스에 수화통역사가 화면 한쪽 귀퉁이에 등장한다. 농인들을 위한 배려다. 시청하면서 눈이 자주 가 있다. 통역사가 그려 보이는 손과 팔의 움직임과 순간순간 바뀌는 표정 변화가 눈길을 끌면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양한 뉴스 내용을 저렇게 몸짓으로 표현해 제대로 전달이 될까, 양방향 소통수단으로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절묘한 것인가. 뉴스엔 어려운 한자어와 외국어며 추상어도 뒤섞이는 터라 궁금증이 생긴다. 그보다 뉴스를 구성하는 문장 내용을 진행자의 말에 맞춰 수화로 표출해 내고 있으니, 내공 없이 되지 않을 것이라 놀랍다.

코로나19 관련 뉴스에 나이 지긋한 여자 통역사가 수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많은 통역사를 보아 왔지만 그분은 유달랐다. 가만 서서 하지 않고 온몸으로 하는 수화다. 손과 팔이 굵게 움직이고 입이 미묘하게 열리고 닫힌다. 감염자의 동선 운운할 때는 두 손을 맞붙여 꺾어 세우더니, 단 2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 쉴 새 없이 말하면서 동선을 그렇게 표현했다. 수화 구사가 역동적이고 현란하다. ‘아, 수화엔 말하듯 입이 움직이는구나. 마스크를 못 쓰겠구나. 입 모양도 함께 해야 완벽한 전달이 가능하겠구나.’ 브리핑하는 사람이 쓴 마스크를 통역사는 벗은 채 수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코로나19 난국도 저런 희생이 있어 기어이 헤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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