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지옥’으로 변한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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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고교 동창이 5년 전 늦장가를 갔다. 마침 신혼기간에 1년간 미국 연수를 가게 됐다. 송별회 자리에선 부럽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동창의 낯빛은 어두웠다. 아이는 빨리 갖고 싶은데 출산비용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도 자연분만은 1000만원, 제왕절개는 2000만원이 넘는다. 만에 하나 미숙아를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순간, 청구금액은 1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동창은 미국 연수기간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는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꼬집었다. 식코는 ‘병자’ 또는 ‘환자’를 뜻하는 미국 속어다.

“가운데 손가락 봉합에 6만 달러(7300만원), 약지 손가락 봉합에는 1만2000달러(1400만원)가 필요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인 ‘릭’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다 손가락 2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이 가난한 환자는 결국 가운데 손가락 봉합 수술은 포기한다.

릭은 “접합비용이 싼 손가락 하나만 붙였고, 가운데 손가락은 갈매기가 우글거리는 매립장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명을 넘었고, 확진자는 40만명에 육박해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여성에게 검사비와 치료비로 4280만원이 청구됐다. 반면, 부산의 한 병원에서 19일 동안 치료를 받은 국내 환자가 낸 비용은 4만4150원에 불과했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음압병실에서 치료를 받으면 억 단위 비용이 들어서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사망자가 폭증하자 지게차로 시신을 옮겨 냉동트럭에 보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만2000여 명이 사망한 이탈리아는 세계 8대 경제 대국이지만 의료시스템이 붕괴됐다.

지난 3월 중순 이탈리아 북부의 한 지역신문은 부고기사가 10페이지에 달해 뉴스감이 됐다.

의사와 의료장비, 병실이 턱없이 부족해 노인보다 살아날 확률이 높은 젊은 사람을 먼저 치료하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의대를 졸업해도 택시기사를 하는 것이 수입이 더 낫다며 지난 10년간 1만명이 넘는 의사들이 해외로 빠져 나갔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갔던 교민과 유학생들의 귀국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유럽으로 나간 한국인들도 서둘러 짐을 싸서 귀국길에 올랐다.

생필품 사재기에다 자택 대피령까지 겹치면서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가중돼 역귀국 행렬이 이어졌다. 미국에선 코로나19 검사와 치료가 불확실해 체계적인 진단과 치료 시스템을 갖춘 한국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의료제도는 민영의료보험사와 민간 병원이 주도하면서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자본주의 체계다. 유럽은 세금을 재원으로 국가 주도의 무상 공공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병원에서 무상으로 해주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은 무려 1년이나 밀려 있는 상태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보험원리에 의거,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내고 이를 기금화해 국민 서로가 비용을 나눠 부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부유한 외국인 환자의 치료와 휴양으로 의료·관광산업을 키우겠다는 영리병원은 4·15총선 이슈에서 쏙 들어갔다. 자본이 의사를 고용하고, 투자자가 수익금을 회수할 수 있는 영리병원의 민낯을 보게 됐다.

선진 의료를 자랑하던 국가들이 ‘의료 지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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