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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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의 원래 의미는 ‘아주 손쉬운 일’이다. 일반인이라면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기는 것’은 약간의 수고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말의 탄생은 예상외로 ‘청탁’과 관련 있다. 당송 팔대가의 한 명인 한유(韓愈)의 ‘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과거에 응함에 있어 시험관에게 띄우는 편지)’란 글에서 나온다. 당시 당나라의 과거는 1차인 예부(禮部)와 2차인 이부(吏部)로 나눴다.

한유는 25세에 예부를 통과했으나 이부에는 낙방을 거듭했다. 그런데 당시의 풍습으로 선비들이 미리 지은 시문을 시험관에게 보내 그 역량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 그 내용에 “其窮而運轉之蓋一擧手一投足之勞也(기궁이운전지개 일거수이투족지로야)”란 문장이 있다. 풀이하면 “힘이 있는 그대가 궁한 처지의 나를 옮겨주는 것은 손이나 발을 잠깐 움직이는 것과 같은 손쉬운 일이다.” 한 마디로 합격시켜달라는 읍소다.

▲IT 기술 발달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한결 손쉬워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몇 시간 후에는 그의 동선까지 샅샅이 알 수 있다. 언제, 어느 곳에 들러서 누굴 만났고, 무얼 샀는지 등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사자로선 사생활이 탈탈 털리는 격이다.

어느 자가격리자의 고백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의심 증세가 나타났을 때 “확진자로 판명 나면 슈퍼전파자가 되겠구나, 동선 공개로 2주간의 행적이 드러나겠구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후자가 더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상이 코로나 이후엔 더 심해질 수 있다. ‘21세기판 빅브라더’의 출현에 의해서다. 지금도 러시아 모스크바에선 얼굴 인식 카메라 17만8000개가 설치돼 자가격리자를 추적하고 있다. 중국 일부 도시는 무단횡단자의 얼굴을 식별해 그의 신원과 얼굴을 전광판에 띄우고 인터넷에도 공공연히 공개할 정도다.

▲‘일거수일투족’은 오늘날에 와선 ‘하나하나의 동작이나 행동’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여기에 ‘감시’라는 단어가 더해지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이젠 일거수일투족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누구나 곤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인권 침해를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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