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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신보
  • 승인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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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녀 수필가

포크레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기계의 위력에 대문이 맥없이 허물어지며 뿌연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지켜보던 나는 먼지를 피한다는 구실로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대문과 창고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고 있자니 서운한 마음이 들며 외면하고 싶었던 게다. 지난해 봄 주차장 공사를 하던 우리 집 모습이다.

타던 자동차를 바꾸려고 했더니 자기차고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실 고민은 지지난해부터였다. 자동차가 오래 되긴 했어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서 미적거리다 보니 금세 일 년이 지나버렸다. 결국 한 해라도 더 가기 전에 바꾸자고 마음을 먹고 나섰더니 그만 브레이크가 걸리고 만 거다. 도리가 없었다. 어쩌랴. 정보에 어두운 나를 탓할 수밖에.

시청에 가서 접수를 하자 여건이 되는지 확인하고 바로 허가가 나왔다. 막상 시작하니 공사는 일사천리였다. 대문과 창고를 없애고 잔디밭 일부를 잘라내어 시멘트 포장을 한 후 규격에 맞는 선을 그리니 주차장이 완공 되었다. 목재로 다시 대문을 만들고 내친김에 미루어 오던 집 외벽 페인트까지 마쳤다. 내부는 수년 전에 이미 아파트 구조로 리모델링을 한 터라 이만하면 족하다.

새 차 역시 달랐다. 소음도 없고 가방에서 키를 꺼낼 필요 없이 버튼이면 다 된다. 자동화된 기능들이 처음엔 적응이 잘 안되더니 그것도 잠시, 12년 동안 내게 멈춰있던 기계문명은 단절된 시간을 바로 이어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지난겨울 핸들로 전해지던 따뜻한 열감이라니. 손이 차가운 나에게 그만한 안성맞춤이 또 있을까. 용단 내리기를 참 잘했다. 편리함에 바로 안주한다.

얼마 전에 이전에 같이 활동했던 신부님을 우연히 만났다. 몇 년 전 처음 뵈었을 때 키가 훤칠한 신부님이 작은 차에서 내리는 모습에 언뜻 들어온 내 선입견이 부끄러워지며 젊은 사제에게 속으로 경의를 표했었다. 그날도 역시 소형차를 타고 오신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아주 당연히 중형차를 고수했던 내가 다시 보였다. 초라했다.

사람이 자유의지로 살아지는 건 아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무언가 놓치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점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이미 길들여진 마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무얼까.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정신분석가이며 정신과의사인 정도언의 저서,프로이드의 의자에 있는 몇 줄을 떠올린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테리, 오늘은 신의 선물. 그래서 현재를 프레즌트(present)라 한다.’.

어찌 보면 내 삶의 주체는 온전히 나다. 그러기에 내일의 낯선 시간을 위하여 내게 주어진 오늘을 껴안고 사는 거다. 낮은 쪽에 지향점을 두고 순간순간 매몰되지 않게 마음을 끌어올리며 걸어가는 것. 마음의 다운(down)은 곧 업(up)일 터이니.

하늘 맑은 날 탁 트인 마당에 나와 선다. 대자연의 숨결로 사방에서 생명들이 깨어난다. 자목련 나무에 물이 흠뻑 오르고 세상은 연둣빛 향기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 그대로다. 집도 대문도 자동차도 내 시선이 멎는 모든 것이. 정원을 지키는 나무들이며 해마다 찾아와 둥지를 트는 새들, 잔디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노란 풀꽃들. 이 모두 새봄이 되어 다시 만난다.

문득 이들과의 재회가 우연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 보면 이들 존재는 이미 나와 연이 닿아 있기에 내 삶에 들어와 공유하는 게 아닐까. 이곳엔 나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기쁨과 슬픔과 좌절의 쓰라림을 바위보다 강한 시지프를 떠올리며 함께 해 왔다. 이곳에서 나는 숨을 쉬고 책을 읽으며 기도하고 마음을 북돋운다. 무얼 더 바라랴. 아늑한 이곳, 나의 퀘렌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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