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4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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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꿈꿔야 한다.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음의 증거다. 꿈이 있어 삶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다. 꿈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미래가 없다 함은 존재의 무의미, 허망함이다.

꿈이 있는 사람이 꿈을 꾼다. 가령 그 꿈이 속절없다 해도,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라 해도 꿈이 있어 현실이고 일상이다. 보통 꿈이 특이한 것은 꿈속의 ‘나’는 ‘나’이면서 현실의 ‘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실의 ‘나’와는 단절돼 있다. 그래서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아 근거 없는 괴기(怪奇)한 것들일 때가 많다. 꿈의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자는 동안 뇌는 영화를 촬영한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경험한 것이 기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꿈”이라 했다. 하루의 잔상이 곧 꿈이 된다는 말이다. 미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으로 ‘꿈은 억눌린 욕망이 표출된 것’이란 주장이다. 꿈이 고통을 완화시키고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더 잘 버틸 수 있게 한다는 이론도 있다.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노인이 자면서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건 분명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간난신고의 삶 속 수면 상태에서나마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위안이고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악몽에 허덕이다 깨고 나면 가슴이 휑하다. 무얼 뺏긴 듯, 그리던 꿈이 일시에 소멸한 듯, 품었던 희망이 풍비박산된 것처럼 허탈하다. 반대로 환상적인 꿈을 꾸고 난 아침은 맘이 달뜬다. 밥맛이 돋아나고 시든 꽃도 어여쁘다. 꿈의 효력이다.

일탈을 꿈꾼 적이 있어 수필로 썼다.

‘웬 날갯짓인가. 잡자기 구만리장공으로 비상을 시작한다. 공중부양이다. 뿌연 안개의 징후가 다가와 몇 겹으로 나를 친친 감싸고, 나는 낭인으로 둥둥 떠다닌다. 어제까지 미풍에 지는 잎에도 아이처럼 나를 종종대게 하던 맑은 영혼을 불러들이고 싶다. 서둘러 저편에 매몰해 있는 이전의 기억들을 토악질해 말끔히 걷어 내야 한다. 무소불위의 힘 앞에 굻던 굴욕, 가난에 찢어지던 어둔 희망, 바다에 나가 불귀의 객이 된 할아버지 형제들의 슬픈 전설, 홀연히 내게서 돌아앉아 버린 누구의 지워진 뒷모습, 허구한 날 쓰다 봐도 미완으로 남는 글…. 나를 부수고 헐고 패대기치고 싶었다. 충동과 퇴행과 충격과 갈등과 번민과 이별의 번잡한 감정의 골짝을 지나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 저기다. 시계 안으로 산마루가 잡힐 듯 들어온다. 여행에서 봤던 융프라우요흐처럼 만년설에 뒤덮인 눈부신 절정이 목전으로 성큼 다가왔다. 찬연하다. 올라가야 하리. 저 곳에 가야 만나게 되는 희망의 언어, 저곳에 닿아야 맞대게 되리라는 사람의 속살과 온기…. 고지가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꿈을 깼다. 결말 없는 꿈이었지만 가슴 두근거렸다. 현실에서 흔들리더라도 내가 꿈꿨지 않은가. 꿈은 깨어나며 나를 꿈꾸게 연속성으로 흐를 것이다. 그래서 얻은 신명이 나를 4월로 떼밀지 않는가.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어느새 목월 시 한 구절을 흥얼거리고 있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현실을 어둡게만 바라볼 게 아니다. 꿈꿔야 한다. 돌아온 4월은 꿈의 계절이다. 발돋움하면, 저기 꿈의 언덕에 신록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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