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권토중래
패자의 권토중래
  • 제주일보
  • 승인 2020.04.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동수 논설위원

초나라 항우는 유방과 천하를 두고 이른바 초한(楚漢) 전쟁에서 패하자 오강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그때 나이 31세다. 이를 두고 훗날 어느 시인은 그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기병부대가 말을 달릴 때 일어나는 흙먼지는 멀리서 보면 마치 땅을 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한번 실패한 후 말고삐를 되돌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모습을 ‘권토중래’라 한다. 요즘은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란 시에서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서 기약할 수 없는데/치욕을 안고 견디는 것이 사나이다/강동의 자제 중에는 인재가 많으니/흙먼지 날리며 다시 달려왔다면 그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라 (勝敗兵家不可期, 包着忍恥是男兒, 江東子弟才俊多, 捲土重來未不知)”.

▲ 21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중 절반 이상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17대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새내기’ 초선 의원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20대에 7명이나 있었던 ‘올드보이’ 6선 이상은 여야를 통틀어 단 1명뿐이다. 7선 이상은 전무하다. 물갈이가 큰 폭으로 이뤄진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역 120명 중 39명이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공천에서 탈락, 또는 낙선했다. 미래통합당은 현역 92명 중 34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른바 자객 공천의 칼날도 매서웠다. 야당의 원내대표까지 지낸 엘리트 여성 정치인은 영입 인재 후보에게 통한의 일격을 당했다. 현직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출신인 초선에게 패배하며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여야 차기 대권주자들의 희비도 극명하게 갈렸다. 자신의 위상과 입지를 끌어올린 이도 있지만, 정치 생명을 가늠할 수 없게 된 이도 있다.

낙선과 낙천까지를 합하면 4·15 총선에서의 실패자는 실로 많다. 이들 중 누구는 마음을 추스른 후 재도전을 노릴 것이다.

▲항우가 다시 일어섰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었을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은 “강동의 자제들은 항우를 위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항우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웠을 뿐 지난 일을 교훈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라며 혹평했다. 권토중래를 꾀하려는 자는 새겨 봄직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