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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삶이란 원래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아무 정보도 없이 나아가는 것임을 새삼 더 느껴지는 세상이다.

얼마 전 서울 사는 아들네가 코로나 19로 인해 제주도로 내려왔다. 며느리는 출산 한지 백일도 안되었고 어린이집 휴원은 길어지고 아들 며느리 얼굴은 점점 초췌해지니 안쓰러워 내려오라고 손짓을 해서 결정한 것이다. 며느리에게 다른 사람들은 제주 살아보기로 오는데 너는 시집 살아보기를 하러 오는구나 놀려대면서도 남편 없이 아이들과 있을 며느리를 생각하며 따뜻이 품어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새 가족 맞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정말 둘만 사는 집이 대가족이 되어 북적거렸다. 손녀는 할아버지 집에 오니까 시원하고 편안해서 좋다고, 여기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이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데 기쁨을 주는 만큼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 설거지도 산더미다. 며느리와 부엌에서만 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산은 아기 잠재우기다. 잠을 재우려면 안고 왔다 갔다 발바닥에 불이 날 만큼 해야 겨우 잠이 드는데 이불에 내려놓으면 깨버리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며느리 생각한다고 서로 번갈아 가면서 안고 재우다 보니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손주를 보면 아까워서 다시 안게 되어 드디어 허리며 어깨에 파스로 도배가 되었다. 며느리는 자꾸만 걱정하며 아기를 자기가 재우겠다고 하니 몸조리를 해야 할 며느리 생각하면 아픔도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아 파스도 마음 놓고 부칠 수가 없었다.

며느리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손녀 어린이집 핑계를 대면서 다시 서울로 갔는데 시부모님 걱정해서 간 것을 모르지 않는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서도 자식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능히 그 짐을 마다하지 않고 짊어지는 것이 부모인 것을.

아이들이 가고 난 다음 근육통은 결국 아기를 보았던 시간만큼 지나야 괜찮아졌다. 남편은 손주를 제주도에서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마도 이번 경험을 통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손주들에게 할머니의 어떤 모습이 기억에 남을지 생각하게 되었으니 손주들로 인해 철이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의 버킷리스트 중에 손주들이랑 여행하기가 있다. 자식에게 해 주지 못했던 것을 손주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도 이지만 그보다는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세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가 더 클 것 같다. 훗날에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어떤 순간에는 꺼내 볼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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