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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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코로나가 창궐하자,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학교는 인터넷강의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형식을 갖추어 학생들을 진급시키기에 급급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말하니, 이곳저곳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시간이 흐르자, 돈은 말라, 여기저기에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것을 틈타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하는 척 온갖 사탕발림의 말을 쏟아내니, 순진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꾸며진 말에 현혹되어, 편을 나누어 각자의 우두머리를 향해 무조건 열광한다.

이유는 없다. 정의는 더더욱 없다. 그저 우리 편이니 옳고, 남의 편이니 그르다. 그런 분위기가 싫지만, 그렇다고 살고 있는 속세를 떠날 수도 없다. 중이 절이 싫으면 그 절을 떠나면 된다지만, 내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과 같아, 한시도 살 수 없으니, 그냥 순응하며 그들이 기르는 개돼지마냥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저 사는 것이지, 좋아서 즐거워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해 하듯, 훌륭한 지도자가 만들어주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그저 내 앞에 놓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나, 어리석은 머저리들이 제각각 나서서 까부는데, 알면서도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이지만 인간 같지 않은 신세가 서럽다.

B는 벌려 쓰면 13으로 보인다. 그래서 A와 C 사이에 쓰인 13은 영어알파벳 ‘B(비)’로 보이지만, 12와 14의 사이에 쓰인 ‘B’는 숫자 ‘십삼’으로 보인다. 이렇듯 성인군자도 도둑놈과 함께하면 도둑으로 보이며, 도둑놈도 성인군자와 함께하면 성인군자와 같이 보인다.

도둑놈 소굴에서도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은, 마치 깡패의 무리에 살지만 공신(공부의 신)이 되는 일과 같으리니,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왜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적다거나, 아예 그렇게 된 사람이 없을까?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는가? 최악의 순간에도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벗어날 수 없다면, 말없이 수모를 참고 견디며,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엄청난 크기로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파도를 따라 함께 춤추는 것이다. 아무리 거친 파도라고 하더라도, 때가 되어 바람이 잦아들면 꺾이리니, 그때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춤출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정말 죽을 만큼 함께하기가 싫다면 떠나야 한다. 떠나면 잊을 수 있다. 떠나고자 한다면, 잊으려고 발부둥치는 것보다 다른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오름을 오른다. 내려오는 길에 한쪽 발이 아프다. 아픈 발이 신경 쓰여 더 아프다. 잠시 다른 일을 계획하며 그것에 집중해본다. 어느 순간 잊을 수 있었고, 그러다 어느덧 집에 도착하였다. 잘 쉬다가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픈 부위는 여전히 아팠고, 그 다음날에도 발의 상태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길을 나섰고, 지금은 언제 나았는지 모르게 완치되었다.

아픈 곳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아픈 곳이 더더욱 아프다. 아픈 것을 잊고자 하면 다른 것을 계획하여 그것에 집중할 것이며,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다시 힘차게 나아가면 치유된다.

이래저래 슬픈 사람들아! 잠시 울분을 내려두고 다른 일에 집중하며 미래를 도모하라! 상황은 변화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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